아흔두 번째
‘어떤 사람’이 되고픈 엄마 연구자입니다
매주 수요일 새벽 5시가 되면 알람시계가 이하나 학생을 부지런히 깨워요. 대구에서 서울로 향하는 KTX 기차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간단한 업무로 하루를 여는데요. 이하나 학생은 연건캠퍼스 간호대학에서 지역사회간호학 석박사통합과정을 듣고 있어요.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며 공부하고 있고, 간호대학에서는 학부생을 가르치는 강사예요. 스누새는 목요일 저녁까지 일정을 꽉 채우고 대구로 돌아가는 이하나 학생을 만나봤어요.
엄마이자 대학원생으로서 자긍심을 느끼고, 이 길을 걸어온 모든 선배 연구자들을 존경해요.
엄마이자 대학원생으로서 자긍심을 느끼고, 이 길을 걸어온 모든 선배 연구자들을 존경해요.
동료간호사와 함께 (좌) / 병동에서 이하나 학생 (우)
동료간호사와 함께 (좌) / 병동에서 이하나 학생 (우)
이하나 학생은 간호학과를 졸업하자마자 서울아산병원에서 간호사로 7년간 근무했어요. 간호사로 일하면서 삶과 죽음의 간격이 매우 가깝다고 느꼈어요.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병원에서 마주하는 현실이 나와 가족의 일이기도 한 것을 묵직하게 깨달았죠. 그때쯤이었을 거예요. 질병 치료를 넘어 간호사가 하는 일이 얼마나 깊은 의미를 지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죠.”
보건학 석사학위 수여식
보건학 석사학위 수여식
이하나 학생은 환자들이 퇴원하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약 먹는 방법을 잊지 않았는지 염려됐다고 해요.

“퇴원한 환자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그곳을 지역사회라고 하는데요. 병원에서 알려드린 대로 약을 드시는지 생각나고,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면서 겪는 건강관리, 질병, 노화 등이 궁금해지면서 보건학에 관심이 커졌죠.”

이하나 학생은 잠실에 살면서 관악캠퍼스와 서울아산병원을 오고 가며 2018년에 보건학 석사학위를 받았어요.
아이를 키우며 대학원을 다녀야 하니 시간을 쪼개서 사용해요.
아이를 키우며 대학원을 다녀야 하니 시간을 쪼개서 사용해요.
이하나 학생은 보건대학원을 졸업하고 결혼했는데요. 여전히 간호학 공부가 그리워서 이론부터 다시 차근히 공부하고 싶었다고 해요.

“석박사통합과정에 입학하던 2021년에 첫아이를 임신하면서 병원 근무와 학업, 육아를 모두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어요. 아쉬웠지만 오래 정들었던 서울아산병원을 퇴직하고 전일제 연구원으로 참여했어요. 다양한 연구 경험을 쌓는 시간이었죠.”
이하나 학생의 두 자녀 (좌) /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 (우)
이하나 학생의 두 자녀 (좌) /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 (우)
첫아이 육아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해서 불가피하게 대구로 이사를 했는데요. 수업이 있는 날은 대구에서 서울로 매번 KTX 기차를 타고 왕복해야 했죠.

“첫아이를 출산하고 산후조리원에서 논문 리비전을 제출했어요. 저에게 기회였는지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었고 휴학 없이 연이어 공부를 이어갔어요. 둘째 아이는 출산예정일이 학기 중이어서 한 학기를 휴학했지만, 이번 학기가 벌써 마지막 학기예요.”
돌잔치에서 모든 가족과 함께
돌잔치에서 모든 가족과 함께
이하나 학생의 두 자녀는 14개월, 32개월인데요. 3살 된 첫째 아이가 ‘연구’라는 단어를 알고 있을 정도로 이하나 학생은 집에서도 연구를 이어가고 있어요. 다만 해야 할 일이 많은 날은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야 컴퓨터 앞에 앉는다고 해요.

“후회가 없다면 거짓말일 거예요. 내가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나. 휴학을 좀 더 해서 나중에 학업을 이어가도 되는데 말이죠. 사실 주변에 육아와 출산으로 경력 단절된 엄마나 대학원생들이 많거든요. 그러나 나는 계속 가보자. 멈추지 말고 한 번 해보자 마음먹었죠. 그리고 가족의 지지가 큰 힘이 되었죠.”
친정아버지와 첫째 (좌) / 고마우신 시어머니 (우)
친정아버지와 첫째 (좌) / 고마우신 시어머니 (우)
“아버지가 체육 교사로 계시다가 퇴직을 하셨는데요. 아파트에서 유모차 할아버지로 유명하세요.”

이하나 학생의 친정 부모님은 어린이집 등하원을 해주시고, 시부모님은 수업으로 서울로 올라갈 때 둘째를 돌봐주신다고 해요.

“양가 부모님께 정말 감사하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예요. 간호대학원에는 아이를 키우며 연구하는 분들이 있어서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부분이 커요. 교수님, 같이 연구하는 선생님들이 격려를 많이 해주시죠.”
학업과 연구에 몰두하는 동시에 두 자녀를 돌보는 일상은 항상 도전이지만, 저를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사람으로 만들었어요.
학업과 연구에 몰두하는 동시에 두 자녀를 돌보는 일상은 항상 도전이지만, 저를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사람으로 만들었어요.
요즘 이하나 학생은 가정간호 연구를 하고 있어요. 간호사 중에는 의료법상 가정전문간호사가 있는데 마취, 아동, 노인, 종양 등 13개의 전문간호사들이 활동해요. 퇴원 후에도 여러 가지 처치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간호사들이 직접 가정을 방문하고, 원하는 사람은 서울대병원의 가정간호사업팀에서 신청하면 가정간호를 받을 수 있어요.

“기관절개관으로 인공호흡 하시는 분, 걷기 힘들거나 쇠약해져서 보호자들이 병원으로 모시기 어려운 분들이 많아요. 가정전문간호사는 간호사가 단독으로 판단해서 기본간호를 해요. 돌봄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유치도뇨관 교환, 산소 요법 등을 적용하고 간호합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절망감을 느끼지만, 또 다른 날에는 ‘둘 다 잘 해내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줘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절망감을 느끼지만, 또 다른 날에는 ‘둘 다 잘 해내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줘요.
“생명은 정말 고귀하고 기적 같은 존재예요. 두 아이의 임신과 출산을 직접 겪으니 '돌봄가치'를 대하는 신념이 더욱 확고해졌어요. 지역사회간호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죠.”

이하나 학생은 각종 세미나를 찾아서 참석하고, 이메일이나 벽보를 자세히 읽는 습관이 있는데요. 여러 정보를 보면 새로운 연구 방법론을 알게 되고 때로는 영감을 얻는 경우가 있어서 간호학과 관련이 없어도 주의 깊게 읽어본다고 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38%는 집에서 편안하게 삶을 마감하고 싶어 하는데요. 실제로는 75%가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돌아가세요. 생애 말기에 죽음의 질이 너무 떨어지는 거죠. 환자가 자기결정권을 갖고 죽음을 미리 준비하고 맞이하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이하나 학생은 우경미 교수님과 함께 생애 말기 간호를 연구하고 있어요.
서울대 여교수회 글로벌 여성 리더십 장학금 수여식에서 소감을 발표하는 이하나 학생
서울대 여교수회 글로벌 여성 리더십 장학금 수여식에서 소감을 발표하는 이하나 학생
11월 21일, 이하나 학생은 서울대 여교수회의 글로벌 여성 리더십 장학생으로 선정되었어요. 여교수회는 미래여성리더를 지원하기 위해 외국인 유학생과 육아병행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육아와 공부는 제 할 일이었는데 장학금을 주셔서 영광스럽고 감사하죠. 그동안 가족들이 도와줬고 아들 둘을 키우시는 지도 교수님이 이해를 많이 해주셨어요.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는 대학원생들을 대표해서 받는 상이라고 생각하니까 자부심이 생기고 책임감이 커요.”
모든 과정에서 친정 부모님, 시부모님, 그리고 남편의 지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을 거예요.
모든 과정에서 친정 부모님, 시부모님, 그리고 남편의 지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을 거예요.
1주일에 한 번 필라테스 운동으로 체력을 다지고, 주말에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이하나 학생의 앞으로 계획을 들어봤어요.

“지역사회에서 말 그대로 돌봄을 잘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직은 ‘어떤 사람’이 실무자가 될지 연구자가 될지 정확히 모르지만 ‘어떤 사람’을 향해 달려가고 싶어요.”

어린 시절 꿈이 간호사였던 소녀는 간호사로 미래를 그리며 성장했어요. 행복하지만 가끔은 버거운 일상이라며 이하나 학생은 말하는데요. 따뜻하고 밝은 시선을 가진 이하나 학생이 두 아이의 엄마로 간호사로 연구자로 발돋움해서 바라는 ‘어떤 사람’을 꼭 만나길 스누새가 기대할게요.
답장 (6)
  • 원앙
    원앙
    '어떤 사람이 되고픈' 이라는 표현에 너무나 공감하며 글을 읽었습니다. 저도 지방에서 아이를 키우며 학위과정을 이어가고 있는 엄마학생인데요, 어린이집에서 장래희망에 대해 알아오고 나서부터 "엄마 꿈은 뭐야?엄마는 뭐가 되고싶어?"라는 질문을 자주 합니다. "엄마는 oo이 엄마 되는게 꿈이었어! 엄마는 꿈을 이뤘지~" 하면 "아니 그거 말로, 아빠처럼 특별한거~" 라고 말해요. 아이 눈에도 이 엄마가 아직 '무언가가 되지 않은 상태' 로 보이는것 같아 졸업 의지를 다잡게 된답니다. 저도 언젠가 학위를 따고 무언가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겠죠? 저는 부모님이 모두 학교 근처에 계시고 저희 가족만 지방에 있는지라, 양가 부모님이 육아를 도와주시는 이하나선생님이 부럽기도 하네요 :) 세상의 모든 엄마학생 화이팅입니다!!
  • 제비
    제비
    글을 읽으며 저도 학부 시절에 해외에서 간호학 공부를 하며 동시에 재활센터와 학교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를 하던 일상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아직 엄마는 아니지만 앞으로 쭉 연구를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하고, 언젠가 결혼해서 엄마가 될 수도 있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하나 선생님처럼 저도 연구와 가정을 함께 이어나갈 수 있도록 두가지 모두 놓치고 싶지 않아요. 어렵지만, 그 어려운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셔서, 그리고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졸업까지 화이팅 입니다!
  • 꿩
    연구, 강의, 학업, 육아,, 주어진 일이 많음에도 진심을 다해 모든 일에 임하고 잘 이끌어 나가시는 이하나 선생님의 이야기를 보며 나는 과연 지금의 나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어떤 사람'이 될 지는 아직 모르지만 잘 해내고 있다 스스로를 응원하며 슬기롭게 학위과정을 보내보고 싶습니다. 여러 일들을 척척 해내시는 육각형 인재 이하나 선생님의 앞으로의 날들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밀화부리
    밀화부리
    학내에 엄마연구자 엄마학생분들의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싶습니다. 저또한 그런 사람이고 육아와 연구 병행이 정말 쉽지 않음을 느낍니다. 아이 둘이라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선생님의 열정과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 개개비
    개개비
    아픈 엄마를 돌본 입장에서 이 글이 더 다가오네요. 화이팅!
  • 기러기
    기러기
    하나샘~~ 너무너무 멋지게 육아와 공부를 잘 병행하고 있어서 대견해. 그 과정에서 힘든 일 많았겠지만 잘 이겨낸 것 같아 다행이야. 건강 잘 챙기면서 공부 이어나가길 바래. 늘 응원할게~♥︎
    - AMC 조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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