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한 번째
캠퍼스 옥상에 꿀벌이 산다?
새해를 맞아 스누새는 부지런함의 상징인 꿀벌을 찾아 날아갔어요. 환경대학원 옥상에 꿀벌을 키우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캠퍼스에서 양봉이라니, 낯설게 들리실 수도 있을 텐데요. 이 활동은 벌써 12년째 이어지고 있답니다.

스누새가 찾아간 날에는 마침 월동 준비 작업이 한창이었어요. 하얀 방충복을 갖춰 입은 이들이 벌통에 보온재를 덧대고 있었죠. 추위에 약한 꿀벌은 공처럼 뭉쳐 겨울을 나는데, 바람을 막아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해요. 사계절 내내 꿀벌을 세심하게 살피는 이들은 환경대학원 동아리 ‘양봉부’인데요. 연구에 몰입하기에도 바쁜 대학원 생활, 이들은 어떻게 꿀벌을 키우게 되었을까요?
월동준비 작업에 한창인 환경대학원 양봉부
월동준비 작업에 한창인 환경대학원 양봉부
환경대학원 옥상 양봉은 2013년 식목일, 당시 학생회에서 시작한 활동이에요. 한동안 공식적인 충원 없이 관심 있는 사람끼리 자발적으로 운영해 오다가, 2025년 2학기에 신입 부원을 공개 모집하면서 부쩍 활기가 생겼다고 해요.

“연구실에서 환경대학원을 졸업하신 박사후연구원분과 대화를 나눴는데 양봉 이야기가 나왔어요. 어릴 때 양봉을 경험한 적이 있어 흥미를 보였더니 양봉부를 소개해 주셨죠. 활동을 하며 양봉의 매력에 빠졌고, 이 경험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서 신입 부원 모집을 제안했어요. 선배들이 좋다고 하셔서 유일한 재학생이던 제가 부장을 맡았고, 공개 모집 후 즐겁게 운영하고 있어요.” (도시계획학과 석사과정 이준혁ㆍ부장)
양봉부 신입부원 모집 홍보 자료
양봉부 신입부원 모집 홍보 자료
양봉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취미가 아닌데요. 신입 부원 모집 소식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였다고 해요. 다들 어떤 계기로 양봉부에 지원했을까요?

“예전에 스누새가 자하연 능수버들 벌목에 관한 편지를 보내줬잖아요. 그때 연구 목적으로 벌집을 가져가셨다는 내용을 보고 ‘학교에 벌을 연구하는 분들이 있구나’ 싶어 관심이 생겼는데요. 얼마 뒤에 우리 대학원에 양봉부가 있고, 충원한다는 소식을 들어서 가입했어요.” (환경계획학과 석사과정 이서정)

“원래 이준혁 학생을 알고 지냈는데, 대학원 생활이 너무 바빠 양봉부까지 할 생각은 못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옥상에 있는 벌통을 한번 보고 가라고 하셔서 바람 쐴 겸 올라갔죠. 그때 마침 말벌이 나타나서 잡았는데, 그게 꽤 재밌더라고요. 이후 자연스럽게 옥상에 자주 갔고, 결국 양봉부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환경설계학과 석사과정 강도경)

“저는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원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데요. 회사에서 ESG 업무를 하면서, 책상에 앉아서 하는 일 말고 내 몸을 움직여서 환경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고 싶었어요. 사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다 보니 대학원 동아리 활동은 생각도 못 했는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양봉부 모집 소식을 듣고 생물 다양성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입했어요.” (도시계획학과 박사과정 구범석)
(왼쪽부터) 이준혁(부장), 이서정, 강도경, 구범석 학생
(왼쪽부터) 이준혁(부장), 이서정, 강도경, 구범석 학생
양봉부가 다시금 활성화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2013년에 환경대학원 학생회장으로서 양봉부를 만든 안태홍 졸업생(환경조경학과 석사)이 지금까지 활동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양봉 기술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채밀한 꿀을 활용해 학생들에게 선순환이 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당시 어떻게 옥상에서 꿀벌을 키울 생각을 했을까요?

“학생회 자립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양봉을 떠올렸어요. 당시 도시 옥상 양봉이 언론에서 많이 소개되기도 했고, 학부 때 원예학을 전공하면서 양봉학도 배웠거든요. 관악캠퍼스에서 양봉이 될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기 때문에 관련 자료, 논문을 찾아 정리한 계획서를 들고 교수님들을 찾아갔죠.” (안태홍)

벌이 가진 생태적 가치와 경제성을 알아봐 주신 교수님께서 옥상 양봉을 지원해 주셨고, 벌통 세 통을 구매해, 첫해에 약 60kg의 꿀을 수확했다고 해요.

“수확한 꿀은 지원해 주신 만큼 학교에 현물로 드리고, 나머지는 동창회에서 선보였어요. 선배님들께서 격려 차원에서 꿀을 모두 사 주셨고, 그 수익금을 간식 이벤트 등 학생 복지 활동에 사용할 수 있었죠. 그렇게 매년 양봉 후 나오는 꿀의 20% 정도는 학교, 학생회에 기부하고 나머지는 판매 후 수익금을 학생회비로 사용해 왔어요. 많을 때는 30통까지, 작년에는 5통을 돌봤죠.” (안태홍)
(좌) 2013년 당시 옥상정원 꿀벌프로젝트 소개 판넬, (우) 안태홍 졸업생
(좌) 2013년 당시 옥상정원 꿀벌프로젝트 소개 판넬, (우) 안태홍 졸업생
벌들과 함께하는 사계절은 바쁘게 흘러가요. 3월, 낮 기온이 15도 이상 올라가면 ‘화분 떡’이라는 먹이를 올려주며 일명 ‘봄 벌 깨우기’를 하는데요. 벌들이 활발하게 번식하고 활동하면서 4월부터는 본격적으로 꿀을 채집해요. 벚꽃꿀, 아카시아꿀, 밤꿀, 잡화꿀 등 가을까지 서너 차례 채밀할 수 있다고 해요.

“벌들이 꿀을 채집하는 동안 저희는 진드기 방제, 급수 등 환경 조성에 신경 써요. 한여름 무더위는 벌들이 가진 자체 쿨링 시스템으로 버티는데요. 저희가 물통에 물만 잘 채워주면, 벌들이 그 물을 벽에 바르고 날갯짓해요. 그러면 물이 증발하면서 벌통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죠.” (이준혁)
(왼쪽부터) 급수 작업, 화분떡 공급, 채밀 활동
(좌측부터) 급수 작업, 화분떡 공급, 채밀 활동
꿀벌에게 무더위보다 무서운 존재는 말벌이에요. 실제로 여름부터 가을까지 양봉부의 주요 활동 중 하나가 말벌 잡기인데요. 이 시기에는 각자 시간이 될 때마다 옥상에 올라가 꿀벌을 지킨다고 해요.

“작년에는 말벌이 7월 20일에 처음 나왔는데요. 여름부터 가을까지 지속적으로 출몰하기 때문에 때마다 틈나는 대로 올라가서 말벌을 잡습니다. 날짜별로 당시 기온, 말벌 개체 수 등 기록해서 관리하고 있어요.” (이준혁)

관악캠퍼스는 일반적인 도심 옥상에 비해 밀원이 풍부해서 꿀벌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에요. 실제로 환경대학원 옥상 정원의 꽃들은 해가 지날수록 더 많이 잘 피고, 열매도 더 잘 맺히는 게 느껴진다고요. 그런데, 캠퍼스에서 꿀벌을 키운다는 사실에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어요.

“꿀벌은 기본적으로 꽃에 관심이 있어서 길만 잘 구분해 주면, 사람에게 해를 입힐 확률은 거의 없어요. 그래서 ‘동선 분리’에 신경 쓰고 있죠. 만약에 봄철 캠퍼스를 걷다가 나무에 매달린 벌무리를 본다면 그건 여왕벌이 새집을 짓기 위해 옮겨 가는, 일명 ‘분봉’을 하는 것인데요. 분봉 시기 꿀벌은 대체로 배에 꿀을 가득 넣은 상태라 공격할 확률이 낮지만, 저희에게 연락을 주시면 데려가겠습니다. 다만 말벌 집을 발견하신다면 바로 119에 신고하셔야 해요.” (안태홍)
말벌 포획
말벌 포획
꿀벌은 ‘부지런함’과 ‘협동’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한데요. 연구하랴 공부하랴, 바쁜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꿀벌의 생애를 가까이에서 관찰하다 보니 자연스레 느낀 점이나 배운 마음가짐도 있다고 해요.

“환경대학원은 학부 전공의 스펙트럼이 정말 넓어요. 토목공학, 건축학, 지리학, 경영학은 물론이고 예술을 전공한 분도 있죠. 그런 다양성 속에서도 ‘환경’이라는 공통의 지향점이 있기 때문에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재미있게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 다르지만,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간다는 점에서 저는 환경대학원이 벌들의 사회와 닮아 있다고 생각해요.” (강도경)

“꿀 한 방울이 만들어지기까지 매일의 노동이 쌓이고 수많은 벌이 각자의 역할을 다해야 하는데요. 그게 제 대학원 생활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업을 듣고, 자료를 찾고, 과제를 해내는 시간이 계속 쌓여야 졸업이라는 결과에 도달하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 비슷해요. 벌들도 각자 역할이 있고, 협력해야 꿀이 만들어지잖아요. 대학원도 개인의 노력만큼이나 팀 과제나 연구 협업처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구범석)
“꿀벌의 일상은 대학원 생활과 닮았어요”)
“꿀벌의 일상은 대학원 생활과 닮았어요”
꿀벌은 대표적인 환경 지표종이에요. UN 식량농업기구(FAO)에서 발표한 전 세계 식량의 90%를 책임지는 100대 농산물 중 71종을 꿀벌이 수정하죠. 그러니까, 꿀벌이 살기 힘든 환경에서는 사람도, 저 스누새도 살기 힘들 거예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양봉이 대학원 생활의 작은 즐거움에서 시작해 우리 일상의 지속가능성까지 고민하게 하는 활동처럼 느껴졌는데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활동을 이어가고 싶은지 들어봤어요.

“캠퍼스 양봉이 관악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정량적으로 알기 위해서 개체 수, 벌의 활동량, 수분율 등 지표를 잡고 장기적으로 데이터를 쌓아볼 계획이에요. 그 과정에서 부원들끼리 학술적인 결과물을 만들 수도 있을 거라 기대하고요. 데이터와 연구 결과가 쌓이면 ‘비프렌들리(bee-friendly)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다른 단과대도 함께 실천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캠퍼스, 더 나아가 지역사회까지 양봉 네트워크를 넓히는 게 목표예요. 그 전에, 이 편지를 읽으시는 분들께서 꿀벌과 생태계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준혁)

“환경대학원에는 도시를 ‘만들고 운영하는’ 전공도 많은데요. 개발을 논의할 때 녹지를 충분히 확보하고, 다양한 동식물이 살아갈 서식지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꿀벌에 관한 관심과 연구가 작은 단서이자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인식을 더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안태홍)

12년째 이어져 온 환경대학원 양봉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작은 꿀벌 한 마리가 얼마나 큰 의미를 담고 있는지 깨달았어요. 부지런히 꽃가루를 모으는 꿀벌처럼, 묵묵히 연구하는 대학원생들처럼, 서울대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도요. 혹시 캠퍼스를 거닐다 꿀벌을 만나게 된다면, 잠시 멈춰 그 작은 날갯짓을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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