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여섯 번째
2승 2무 381패, “패배는 아프지만 포기할 이유 아니죠”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학교를 떠들썩하게 만든 소식이 있었어요. 바로 서울대학교 야구부가 창단 27년 만에 첫 승을 거두었다는 소식이었죠. 대회 우승이 아닌 단 한 차례의 승리에 왜 관심이 집중됐을까요?

1977년 창단한 야구부는 체육특기생, 일명 엘리트 선수로 이루어진 다른 대학 야구팀과는 달리 순수 아마추어 선수로 이루어진 팀이었어요. 대학 야구 최약체, 만년 꼴등, 백전백패……. 야구부를 수식하는 뼈아픈 단어들과 계속되는 패배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노력한 결과로 얻어낸 드라마 같은 승리였죠.

그리고 오늘날까지 우리 야구부는 변함없이 야구를 향한 열정과 끈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지난봄 오랜 공백을 깨고 다시 한번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어요. 강원도 횡성에서 열린 한국대학야구연맹(KUBF) U-리그에서 20년 만에 두 번째 승리를 기록한 것인데요. 경민대를 상대로 9-2라는 큰 점수 차를 내며 7회 콜드게임 승리를 거머쥐었어요.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서울대 야구부 정신’을 지켜오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쉼 없이 훈련하는 야구부 친구들을 만나러 스누새가 날아갔어요.
2004년 첫 승리 당시(좌)와 2024년 20년 만에 거둔 두 번째 승리(우)
2004년 첫 승리 당시(좌)와 2024년 20년 만에 거둔 두 번째 승리(우)
현재 야구부는 선수 23명, 매니저 6명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인문대, 사범대, 경영대 공대 등 다양한 학부의 학생이 함께하고 있다고요. 초등학생 때 야구를 시작한 에이스 선수부터, 이전까지 야구를 전혀 배워본 적 없는 선수들까지 다양한 친구들이 모여 한마음으로 활동하고 있는 만큼, 야구부를 찾은 이유도 각양각색이라고 해요.

“마운드에 서서 삼진을 잡는 투수를 보면 멋있잖아요. 짜릿하기도 하고요. 고등학교 때까지 야구는 쉽게 접하기가 어려웠는데, 저는 막연히 ‘체육대회에 야구 종목이 있으면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그래서 대학생이 되면 야구를 꼭 해보고 싶었고, 활동하면서 야구의 매력에 빠져서 주장까지 하게 됐어요.” (주장 임준원, 수학교육과ㆍ20)

“초등학교 4학년 때 리틀야구단에서 야구를 시작했어요.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드래프트에서 지목을 받지 못했고, 공부를 병행해서 서울대에 합격했죠. 합격 후에 바로 야구부 선배들에게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입학식 전인 2월 야구부에 먼저 들어와서 제주 전지훈련부터 따라갔어요.” (이서준, 체육교육과ㆍ22)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지만, 한 번도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은 없었어요. 처음엔 ‘내가 감히 야구부에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해서 가입할 생각을 못 했는데요. 당시 기숙사에 같이 살던 친구가 야구부에 가입했다고 해서 저도 용기 내서 들어오게 됐어요.” (양서진, 건설환경공학부ㆍ21)

“저는 매니저로 선수들을 서포트하고 있는데요. 1학년 때 농구부에서 활동했는데, 부상으로 인해 선수로서는 한계를 느꼈어요. 그러다 2학년 때 농구부 매니저 일을 했는데 그쪽이 더 적성에 맞더라고요. 이후에 진로를 스포츠 쪽으로 정하면서 야구부 매니저에 지원하게 됐어요. 전공이 노어노문학인데, 어떻게 보면 문학과 스포츠가 정말 비슷하거든요. 삶의 축소판이고, 예측 불가하다는 점에서요. 그래서 하루하루 즐겁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구경민, 노어노문학과ㆍ21)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 이서준 선수, 임준원 주장, 구경민 매니저, 양서진 선수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 이서준 선수, 임준원 주장, 구경민 매니저, 양서진 선수
야구부는 47년의 역사 속에서 385번의 경기를 치렀고, 올해 값진 두 번째 승리를 거뒀는데요. 승리를 목표로 군 복무 시기도 맞추고, 졸업을 미룬 선수까지 있었다고요. 감격스러운 승리의 현장을 함께했던 친구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서울대 야구부에 와서 2년 동안 마흔 경기 가까이 항상 지기만 하니까, 이기는 게 상상이 안 가더라고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이길뻔하다가 결국은 한 끗 차이를 못 넘고 지는 경기를 해와서 기대만큼 불안감이 컸어요. 항상 지면서 우리끼리 야구하는 느낌이었는데, 이기고 나니 비로소 상대 팀이랑 엎치락뒤치락하며 시합하는 기분이 들어서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이서준)

“경민대 전을 치르면서 진다는 생각을 안 했어요. 저희가 이번 U-리그 첫 경기 때부터 좋은 모습을 계속 보여줬고, 직전 한국골프대 전에서도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거든요. 20년 전 선배님들도 1승 직전에 무승부를 기록하기도 했고요. 가장 좋았던 부분은 상대가 안일하게 생각하거나 못해서가 아니라, 저희가 잘해서 이겼다는 점이에요. 준비한 걸 잘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양서진)

“올해가 정말로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야구를 잘하는 친구들이 군 복무 시기를 맞추고서 돌아온 해이기도 했고, 전력 보강을 위해 졸업을 안 하고 야구부에 돌아온 형들도 있었어요. 상대 팀 전력 분석도 치밀하게 했고요. 경민대 전에서도 안타 하나에 환호하고, 점수 낼 때마다 분위기를 끌어올렸어요. 그렇게 초반에 잡은 기세를 잘 끌고 간 것 같아요. 주장으로서 승리에 대한 기쁨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컸거든요. 열심히 해준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요.” (임준원)

“정말 기쁘고 감동적이었어요. 우리 선수들이 정말 프로선수 못지않게 준비를 많이 하는데 이제껏 정말 힘들었거든요. 5회 콜드패를 당하기도 했고, 잘하다가 갑자기 9회에 점수를 주면서 진 때도 있었고요. ‘엘리트와 아마추어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구나’ 하고 생각해 왔는데, 이기고 나니 ‘우리 팀이 강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인적으로 뿌듯했던 건 매니저로서 경기 영상을 잘 남겨서 이번 승리를 더 오래,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구경민)
승리 후 헹가래로 기쁨을 나누는 야구부
승리 후 헹가래로 기쁨을 나누는 야구부
1998년, 한 대기업 광고에서 서울대 야구부의 이야기를 “우리가 승패에 초연한 것은 아니다. 지는 것이 즐거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시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내레이션으로 묘사했는데요. 승리의 기쁨 뒤에 오랜 패배의 시간을 보내온 야구부 친구들에게, 이기고 지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졌어요.

“저 같은 경우 선수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까지는 한 경기 한 경기 이기고 지는 게 엄청난 의미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서울대 야구부에 와서는 한 경기라도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되니까 매 경기가 좀 더 중요해졌어요. 지는 것이 일상이지만 주저앉지 않고 왜 졌는지, 어디서부터 실수가 있었는지 피드백하고 다음을 준비하면서 조금씩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서준)

“지는 경기를 하면 부족한 부분을 알게 되잖아요. 야구를 오랜 시간 해온 친구들과 경쟁하면서 저희가 한두 발짝 뒤에 있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무기력해지면 좌절하게 될 것 같거든요. 졌을 때 분한 마음이 들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순간순간이 모여서 점수를 만든다고 생각하면서 경기에 임해요.” (양서진)

“저희의 목표는 언제나 당연히 ‘승리’예요. 그런데 백 게임을 하면 백 게임을 지다 보니, 지는 걸 당연히 여기게 될 때가 있어서 그런 부분을 경계하려고 노력해요. 선배님들께서 ‘서울대 야구부는 패배에서 많은 걸 배우는 팀이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서울대 학생이라면 일반적으로 공부에 관해서는 성취를 한 사람이라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야구라는 세계에서는 최약자로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거든요. 계속 패배하면서도 발전시켜 나가려고 하고,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이기려고 하는 그런 자세를 정말 많이 배우고 있어요.” (임준원)
매 경기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 (좌측부터) 이서준 선수, 양서진 선수, 임준원 주장
매 경기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 (좌측부터) 이서준 선수, 양서진 선수, 임준원 주장
이들은 무엇보다 ‘지더라도 잘 싸우려’ 노력하고 있었어요. 상대와의 싸움뿐 아니라 스스로와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거죠. 야구부 훈련은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이어지는데, 한 주에 네 번 필수로 참석해야 한다고 해요. 정기 훈련 외에도 제주 전지훈련, 하계 훈련, 대회 참여 등 빠듯한 일정이 학업과 병행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야구를 계속해 나가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앞으로 제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야구에 매진해야 하는 때라고 믿고 있어요.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하는 경험이 더없이 값지다고 생각하거든요. 오히려 지금 야구를 열심히 해야 나중에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또, 신입생 때는 야구만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중고참이 되면 야구만큼 전체적인 팀 문화 조성, 후배 관리도 중요해져요. 그러면서 배우는 책임감, 리더십의 가치가 되게 크다고 생각해요. 공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야구부에서 배우는 것들은 다른 차원에서 삶의 양분이 돼요.” (임준원)

“저 같은 경우는 아직 프로야구 선수에 도전하고 있어서,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당연하게 야구를 하고 있어요. 개인적인 아픔을 딛고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에 왔는데, 여기에서도 야구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니까 정말 재밌어요. 야구는 같이 잘해야 하는 스포츠니까 제가 배웠던 것들을 많이 알려주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이서준)

“이제껏 살면서 진짜 원해서 하고 싶은 일을 이렇게 열정을 다해서 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야구부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 싶은 욕심도 생기고요. 같은 과 친구들에게 ‘너 또 야구하러 가?’라는 말 진짜 많이 듣거든요. ‘오늘 수업 끝나고 뭐해?‘ ‘나 야구하러 가는데?’ ‘내일은 뭐 해?’ ‘야구하러 가는데?’ 이런 대화가 제 일상이에요. (웃음)” (양서진)
정기훈련은 일주일에 네 번 필수 참석, “힘들 때도 있지만 함께해서 즐거워요”
정기훈련은 일주일에 네 번 필수 참석, “힘들 때도 있지만 함께해서 즐거워요”
야구부의 든든한 지원군은 단연 OB 선배님들인데요. 어려움 속에서도 투지를 잃지 않았던 경험이 오래 남아 지금까지도 무한한 사랑과 관심을 주고 계신다고요. 야구부는 매년 OB:YB 경기를 치르며 졸업생 선배들과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어요.

오랜 역사 속에서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나씩 쌓아 가면서, ‘서울대 야구부’는 끈기와 열정을 상징하는 존재가 됐어요. 그렇다면 지금 활동 중인 친구들은 ‘서울대 야구부 정신’, ‘서울대 야구부만이 가진 색깔’이 무엇이라고 생각할까요?

“솔선수범하는 자세요. 누가 알아준다고 해서, 누가 시켜서 열심히 하는 게 아니거든요.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잘하려고 연구하고,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게 모두 앞장서요. 훈련 시작 전 일찍 나와서 운동장에 물 뿌리고, 땅 갈고, 돌 줍고 하면서 분위기를 스스로 만들어 가죠. 한 사람 한 사람이 야구부 전체를 위해서 솔선수범하고 성실하게 훈련에 임하는 게 서울대 야구부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서진)

“다른 야구부와 달리 야구를 미래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오히려 그래서 모든 훈련에 열정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이 서울대 야구부만의 색깔이라고 생각해요. 그 열정이 팀 문화로 드러나니까 야구를 더 재미있게 할 수 있고 서로서로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아요.” (이서준)

“엘리트 야구부는 ‘프로야구 선수’가 중요한 목표다 보니 각자 경쟁하는 셈이잖아요. 물론 최선을 다해 협동하겠지만 야구부 활동이 하나의 과정인 거죠. 그런데 서울대 야구부는 대부분 이 자체가 종착지예요. 어린 시절의 작은 꿈을 잊지 못해서, 야구가 좋아서 모인 사람들이니까 야구부 활동이 ‘순간에 집중하고 몰입해서 내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가장 뜨거운 순간’인 거죠. 또, 우리 야구부는 선수 개개인의 이야기가 다 다르거든요. 과도 다 다르고, 야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목표도, 성격도, 야구부에서 얻어가고자 하는 바도 다 달라요. 그런 점이 서울대 야구부의 색깔이라고 생각해요.” (구경민)
좋은 환경에서 운동하기 위해 매 훈련 스스로 구장을 정비하는 야구부
좋은 환경에서 운동하기 위해 매 훈련 스스로 구장을 정비하는 야구부
야구부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되는데요. 6월 말부터 시작되는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 전국체육대회 서울시 대표 선발전,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에 연이어 참가한다고 해요. 남은 대회에서 다시 승리 소식을 들을 수 있길 바라면서, 선수들이 남긴 한 마디를 전해드려요!

“야구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망설이지 마시고 야구부에 꼭 지원해보셨으면 좋겠어요. 학업이랑 병행하며 좋은 결과를 내는 친구들도 있으니 일단 한 번 경험해보시기를 바라요. 야구부 안에서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고, 고민하면서 조직을 발전시켜가는 과정이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임준원)

“이번 2승으로 기사도 많이 나오고 했지만,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야구부가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도록 사건을 만들고 싶습니다. 남은 대회에서도 승리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려요.” (이서준)
서울대 야구부, 파이팅!
서울대 야구부, 파이팅!
답장 (3)
  • 기러기
    기러기
    결과만 보는 세상, 야구부를 보며 과정이 중요함을 새삼느낌니다. 응원합니다~
  • 개개비
    개개비
    20년만에 두 번째 승리를 거머쥔 우리 학교 야구부 너무 축하해요! 세 번째 승리로 이어지길 응원합니다.
  • 해오라기
    해오라기
    아마추어 팀이지만 열심히 하시는 모습을 응원합니다. 좋은 기사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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