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번째
의사 선생님은 왜 클라리넷을 들었을까?
움츠러들기 쉬운 차가운 날씨가 이어지는 요즘, 따뜻한 소식이 들려 연건캠퍼스에 다녀왔어요.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기 위해, 의사 선생님들로 이루어진 ‘코리안 닥터스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펼친 건데요. 이 오케스트라의 단장이 의과대학 정형외과학교실 조태준 교수님이시라고 해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소아정형외과에서 아픈 아이들을 치료하고 계신 교수님께서 어떻게 의사들의 오케스트라를 만들게 되신 걸까요?
코리안 닥터스 오케스트라 제2회 정기연주회 현장(좌)과 공연 포스터(우)
코리안 닥터스 오케스트라 제2회 정기연주회 현장(좌)과 공연 포스터(우)
“‘코리안 닥터스 오케스트라’는 25개 의·치대 출신 74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예요. 이번 연주회는 지난해 창단 이후 두 번째 정기연주회였는데요. 20대부터 60대까지 모든 단원이 따로 또 같이 땀 흘리며 준비했어요. 7월에 첫 총연습을 시작해서 전체 연습만 12번을 했고, 개인 연습과 악기별 연습을 포함하면 셀 수 없을 정도예요. 공연을 마친 지금은 마치 수능을 끝낸 수험생이 된 기분입니다. 오랜 시간 준비한 일을 끝냈다는 허전함과 다음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공존하고 있어요.”

음악을 향한 열정으로 모였지만, 직업의 특성상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는 않았는데요. 그래서 연습은 대부분 일요일 저녁에 시작해 밤늦은 시간까지 진행됐다고 해요. 각자의 휴식 시간을 쪼개어 연습에 매진한 거죠. 연주회의 수익은 취약계층 아이들의 음악교육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한다고 하는데요. 취미 활동을 넘어 좋은 일을 하게 된 것은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였다고요.

“좋은 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과 함께하고 싶잖아요. 우리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는 이 음악을 많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즐겼으면 했어요. 그런데 상황에 따라 어릴 때부터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없는 아이들이 있잖아요. 그런 점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취약계층 아이들이 음악을 더욱 다양하게 접하고 즐길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첫 총연습 현장(좌)과 연주회 당일 리허설 무대에 선 조태준 교수님(우)
첫 총연습 현장(좌)과 연주회 당일 리허설 무대에 선 조태준 교수님(우)
수익금 기부 외에도 연주회에 40여 명의 아동과 가족을 초청하는 등 ‘코리안 닥터스 오케스트라’는 취약계층 아동·청소년의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문화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여러 활동을 하고 있어요. 지역아동센터를 찾아 공연하고 대화를 나누는 ‘찾아가는 음악회’도 그중 하나라고 합니다.

“‘찾아가는 음악회’를 하면 바순, 호른 같은 낯선 악기를 직접 보고,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아이들이 정말 신기해하고 좋아합니다. 때로는 아픈 것도 상담해 주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야기도 나누고 하니까 어른으로서, 의사로서, 음악가로서 여러 역할을 하는 시간이기도 하죠.”
일원동(좌), 장안동(우) 지역아동센터 찾아가는 음악회 현장
일원동(좌), 장안동(우) 지역아동센터 찾아가는 음악회 현장
조태준 교수님은 오케스트라 활동이 더욱 활발해져서 지원 규모를 더 늘리고 싶다는 희망도 내비치셨는데요. 그렇다면, 처음 ‘코리안 닥터스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신 걸까요?

“베를린에 본부를 두고 있는 ‘월드 닥터스 오케스트라’가 있어요. 그 주요 멤버 중 아시아권 선생님들이 ‘아시안 닥터스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서 2019년에 제가 아시아 공연에 참여했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사실 클래식 음악 하면 국제적으로 우리 음악가의 위상이 대단한데 아마추어 음악인은 학교 동문끼리 또는 소규모로 모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우리나라도 전체 의료인이 모이면 큰 오케스트라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른 대학 출신의 의사 선생님과 의기투합해서 2020년 코리안 닥터스 오케스트라를 결성했습니다.”

알음알음 단원을 모으다 보니, 우리나라 의료계에 음악적 재능과 열정이 넘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고 바로 풀 오케스트라를 구성할 수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코로나19로 창립 연주회를 열지 못했다가, 2022년 드디어 창단할 수 있었다고요.

“2020년에 함께 하기로 했던 분들께 2년 만에 다시 연락을 드렸는데 한 사람도 빠짐없이 기다렸다고, 참여하겠다고 답장이 왔어요. 거기에서 1차로 감동했는데, 첫 총연습 날 대부분 자리를 채워주셔서 또 한 번 감동했죠.”
2022년 코리안 닥터스 오케스트라 창단 연주회
2022년 코리안 닥터스 오케스트라 창단 연주회
조태준 교수님의 음악사랑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어요. 악기 연주를 좋아해서 대학에 진학하면 꼭 음악반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고, ‘서울의대 음악반’에서 활동했죠. 학창 시절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던 기억 못지않게, 악기를 잡고 악보와 씨름한 기억이 많으시다고 해요.

“의대 공부가 만만한 것은 절대 아니지만, 종일 공부만 할 수는 없잖아요. 저는 휴식과 스트레스 해소를 음악 활동으로 했던 것 같아요. 학생 때는 겁 없이 연주하고 싶은 곡이 너무 많았고, 방학이 되면 교향곡 레코드를 틀어놓고 제 파트를 연주하면서 놀곤 했지요. 또, 지금 생각해 보면 학생 때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서 선후배와 관계를 맺고, 자기가 맡은 역할을 책임감 있게 수행하는 사회생활의 노하우를 많이 익힐 수 있었어요.”
음악반 공연에서 지휘자로 섰던 모습(좌)과 의과대학 히포크라테스선서비 앞에서(우)
음악반 공연에서 지휘자로 섰던 모습(좌)과 의과대학 히포크라테스선서비 앞에서(우)
코리안 닥터스 오케스트라의 활동이 아동·청소년을 향한 도움의 손길로 이어지는 데는 소아정형외과 의사로서 아이들을 보살핀 조태준 교수님의 영향이 컸는데요. 오랜 시간 소아 희귀질환을 진료해 오면서 아이가 청년이 되는 과정을 숱하게 지켜보셨다고요.

“저는 아이들이 정말 사랑스러워요. 아이들은 솔직하거든요. 아프면 ‘선생님 미워 죽겠어요! 왜 저를 이렇게 아프게 해요!’ 하며 떼쓰다가 좀 괜찮아지면 생글생글 웃고, 어느새 철이 들어서 차분해지기도 하고요. 몸이 많이 불편한 아이들을 주로 만나게 되는데, 어려움을 극복하고 열심히 생활을 일궈가는 친구들도 참 많아요. 그러니 기꺼이 이 아이들이 성장해서 사회생활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늙을 때까지 조금이라도 덜 불편하게 생활하도록 최선을 다할 수밖에요. 아이들이 커서 프로야구 선수로 활약하기도 하고, 군대 가기 전에 검진받으러 오기도 하고, 약혼자와 함께 상담하러 나타나기도 하는 걸 보면 정말 자녀를 여러 명 키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교수님은 ‘아이들의 명의’로 불리며 소아 골격계 희귀질환 연구와 진료에 전념해 오셨어요. 몇 가지 유전질환의 원인 돌연변이를 세계 최초로 규명하시기도 하고, 특정 질환의 효과적인 수술 방법을 개발하시기도 했습니다. 아주 드물게 나타나지만, 치료가 어려운 질병의 발병 기전을 규명하시기도 했고요.

“제가 이루어 낸 발견과 발명은 아무런 맥락 없이 혼자서 뚝딱해 낸 것은 아니에요. 우리나라 그리고 우리 대학에 이 분야의 토대를 닦고 발전시켜 온 스승님과 선배님들의 연구 성과의 연장선에서, 그리고 동료와 후배 연구자들의 협업을 통해서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이가 선물한 그림 편지
아이가 선물한 그림 편지
교수로서, 의사로서 바쁘신 와중에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취약계층 아이들에게 음악의 즐거움을 전하는 동력은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도 들어봤어요.

“코리안 닥터스 오케스트라의 단장으로서는 우리 오케스트라가 안정적으로 굴러갈 수 있게끔 틀을 만들고, 아이들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도 보다 큰 규모로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요. 의사로서는 학교와 국적을 불문하고 후학에게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것이 바람입니다.”

아이들과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누구보다 바쁘게, 또 즐겁게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교수님 덕분에 올겨울은 조금 더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겠어요! 스누새는 다음 편지로 또 찾아올게요.
답장 (2)
  • 닭
    어린이 환자가 선물한 그림편지를 보니 조태준 선생님이 아이들을 다정하게 대해주는 게 느껴지네요:) 코리안 닥터스 오케스트라도 더 흥했으면 좋겠어요!훈훈한 소식 덕에 제 마음도 같이 훈훈~!
  • 마도요
    마도요
    아이들을 좋아하시는 마음이 잘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저도 아이들을 많이 좋아하는데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많이 멀어지게 될까 걱정을 했었어요. 의사 선생님 글을 읽고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겠다고 느꼈습니다 :) 한 편의 공연을 올리는 것이 얼마나 품이 많이 들고 고생스러운 일인지 어렴풋이 저도 느껴본 경험이 있는데, 바쁘게 진료를 보시면서도 공연 준비를 하시는 모습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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