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여덟 번째
다음 공부를 시작할 시간
“은퇴하면 그제야 공부를 좀 제대로 하게 되려나 싶은 마음이 들어요. 못 끝낸 숙제들도 조금씩 해나가고 싶고요.”

건축학과 박소현 교수님의 마지막 강의 현장에서 들려온 말이에요. 22년이라는 시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해 오셨는데 비로소 ‘제대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라니, 그 의미가 궁금했는데요. 얼마 뒤, 성산동의 한 책방에 계신 교수님을 찾아갔어요. 퇴임을 앞둔 교수님은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실까요?

“넘어야 할 산들을 하나씩 넘느라 정신없이 보내고 있어요. 일단 고별강의가 진짜 나한텐 힘든 관문이었어요. 강의를 마치고 나서 이번 학기에 졸업하기를 희망하는 연구실 박사생 네 명의 논문심사를 연이어 치렀고요. 이제 남은 일은 연구실을 비우는 거예요. 책들은 어떻게 다 빼나, 자료들은 어떻게 정리하나…. 근데 이런 일들을 마무리하지 않고서는 은퇴를 맞을 수가 없는 거더라고요. 연구실 정리를 마치면 좀 실감이 날 것 같은데, 아마도 그날이 8월 31일일 것 같아요. (웃음)”
박소현 교수님의 마지막 강의 현장
박소현 교수님의 마지막 강의 현장
연구실을 정리한다는 건 지난 시간을 하나씩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겠죠. 그렇다면 교수님은 처음부터 건축이 자신의 길이라고 확신하셨을까요? 건축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들어봤어요.

“화학을 공부하신 우리 아버지가 건축을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저한테 건축이 얼마나 멋진 것인지 종종 이야기해 주셨죠. 제가 어렸을 때 건축에 대한 이해가 높은 건 아니었고, 집에 대한 막연한 관심 정도를 가지고 있었던 거 같은데, 아버지는 ‘네가 하고자 하는 건 아마도 건축이 맞을 거다’라고 조언해 주셔서 건축학과에 가게 됐죠.”

그렇게 건축학도가 되었지만, ‘이 공부가 정말 재밌다’라고 느낀 건 훨씬 뒤의 일이었고, 아이를 세 살까지 키운 후 박사 과정을 밟으며, 비로소 도시를 살아가는 경험이 공부와 맞닿기 시작했다고 해요.

“처음에는 뭘 잘 모르고 그냥 주어진 걸 충실히 했어요. 한국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설계사무소에 잠시 다니다가, 미국에서 다시 석사를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뒤늦게 박사 과정에 들어갔거든요. 그때 유모차를 끌고 다니다 보니까 길거리의 작은 턱 하나도 쉽게 지나갈 수 없는 거예요. 그런 실생활 경험이 어떤 이론보다 도시를 더 실감 나게 느끼도록 해주었어요. 그런 시간이 쌓이면서 ‘아, 내가 하는 공부가 내 일상생활하고 맞닿아 있구나’ 싶었죠. 그때서야 도시를 공부하는 즐거움을 더 알게 된 거예요.”
길었던 유학 시절의 마침표, 딸과 함께 찍은 졸업사진
길었던 유학 시절의 마침표, 딸과 함께 찍은 졸업사진
박사 과정을 마친 박소현 교수님은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어요. 학자로서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 남편분이 먼저 한국에 들어와 살게 된 상황에서 한국 대학에도 지원하셨다고 해요. 그리고 뜻밖에도 서울대에서 연락이 왔죠.

“서울대로 온 건 한 마디로 ‘일생일대의 벼락같은 축복’이었어요. 사실 제가 뽑힐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 했거든요. 늦은 나이에 한국 교수로 들어온다는 게 흔치 않은 일이었고, 당시에는 우리나라 건축학과에서 여자 교수를 뽑는다는 것이 아직은 드문 시기였으니까요. 그래서 정말 운이 좋았고 감사한 일이었죠.”

하지만 18년 동안의 미국 생활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은 결코 단숨에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어요. 한국에서 적응하는 시간도 만만치 않으셨다고요. “미국에서 ‘어떻게 하면 학자로서 즐겁게 성장을 할 수 있겠다’라는 감이 막 오기 시작하던 시기였어요. 딸아이도 한창 예민한 나이였고,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죠. 부끄럽지만 타국이 아닌 내 나라에 돌아와서 좀 힘들었어요. 도시 연구라는 게 현장 기반이 달라지면 처음부터 다시 기초를 다져야 하거든요. 제가 1988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을 떠나 있었는데, 그사이 우리나라가 좀 빠르게 발전했어야죠. (웃음) 그래도 잘 돌아왔어요. 우리 학생들을 만났으니까요. 서울대 학생들은 정말 총명하고, 열정이 대단해요. 그런 친구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몰라요. 서울대 1등 보배는 학생이에요.”
(좌) 학생들의 20주년 축하 메시지, (우) 연구실 학생들과의 여행을 기념하며 맞춘 모자
(좌) 학생들의 20주년 축하 메시지, (우) 연구실 학생들과의 여행을 기념하며 맞춘 모자
서울대에서 첫 10년을 보내며 우리나라 도시 보존관리계획과 근린 보행 연구의 기틀을 만들어 가던 교수님은 2018년 큰 전환점을 맞으셨다고 해요. 학교를 떠나 건축공간연구원장으로 일하면서 그간 놓치고 있던 것들을 뼈저리게 느끼셨다고요.

“엄청 충격이었어요. 건축이 실생활에 기반한 연구라는 걸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제도와 정책의 굴레 안에서 벌어진다는 걸 감으로만 알고 있었던 거예요. 국책기관에서 직접 현장 경험을 하면서 ‘내가 정책이라는 단어를 너무 가벼이 생각하고, 제도를 너무 몰랐구나. 나는 정말 상아탑 안에 있었구나’ 싶었죠.”

당시 건축공간연구원은 국토연구원의 부설 연구소였는데요. 교수님은 임기 동안 기관을 독립시키는 일도 추진했어요. 3년간의 정책 현장 경험은 학교로 돌아온 뒤 연구와 수업에도 고스란히 반영됐어요.

“관계된 여러분들의 도움과 그동안 쌓여온 것들이 맞물린 덕분에 독립 기관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했어요. 학교로 돌아와서는 커리큘럼도 제법 바꾸고, 정책과 제도의 중요성을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지요. 건축도시 디자인의 좋은 아이디어가 정말 중요하지만, 그 땅에는 이미 수많은 규제와 조건이 있거든요. 실제 사례와 관련 정책들을 함께 들여다보니까 학생들도 훨씬 실감 나게 생각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 덕에 서로 더 잘 교감하게 된 것 같고요. 학교 밖에 있었던 시간이 연구자로서도, 교육자로서도 중요한 전환점이었어요.”
건축공간연구원 개원 기념 심포지엄 현장
건축공간연구원 개원 기념 심포지엄 현장
은퇴를 앞두고, 교수님은 지인 두 분과 함께 성산동에 책방 ‘도시상담’을 여셨어요. 스누새가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 날아온 이곳에는 곳곳에 넓은 테이블이 놓여 있었는데요. 교수님께서는 학교를 떠난 후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셨을까요?

“서로 상(相), 이야기 담(談)을 써서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의미로 이름 지었어요. 책방은 학교보다 자유롭고 느슨한 공간인데요. 이제껏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도 즐겁지만, 제일 기쁜 건 졸업생들이 와서 독서 모임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는 거예요. 결국 학생들을 계속 만나고, 함께 계속 공부하고 싶어서 이 공간을 만든 거죠.”

앞으로도 학생들을 만나 함께 공부하고 싶다는 말씀을 들으니, 교수님께 ‘공부’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졌어요.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맞나’를 되물어보는 게 공부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공부를 한다는 건 결국 내가 당연히 안다고 여겼던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는 과정인 것 같아요. 특히, 건축이라는 학문은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모양이 계속 바뀌니까 굳어 있을 수 없기도 하고요.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 있지만, 평생 공부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학생들도 계속 질문하면 좋겠어요.”
책방에서 만난 박소현 교수님
책방에서 만난 박소현 교수님
학교라는 둥지를 떠날 준비를 하고 계시지만, 교수님 마음속에는 아직 끝내지 못한 숙제가 하나 남아 있다고 해요. 우리 연구를 바탕으로 우리 도시를 설명하는 ‘텍스트’, 다시 말해 우리의 교재를 만드는 일이 바로 그것인데요. 왜 이 일이 마지막까지 교수님의 마음에 남아 있을까요?

“우리는 여전히 외국의 텍스트에 많이 의존하고 있어요. 물론 좋은 책들이고 참고할 필요가 있지만, 대학에서는 결국 연구자가 자기 연구를 바탕으로 만든 텍스트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학문이 이어지는 방식이니까요. 저는 그걸 끝까지 완성하지 못한 게 가장 아쉬워요. 우리 세대는 너무 빠르게 성장하느라 미처 텍스트를 만들지 못했으니, 후속세대들이 우리 텍스트를 만들어 주길 바라요.”

후속세대가 학문을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을 전한 뒤에도, 교수님은 여전히 다음 공부를 그리고 계셨어요. 은퇴 후에도 쓰고 싶은 글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으시다고요.

“가깝게는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남겨보고 싶어요. 오래전부터 ‘나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과정을 정리해 보고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결국 그 이야기는 부모님에게서 시작하더라고요. 부모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지금의 나에 이르기까지, 그 시간과 공간을 파편적으로라도 기록해 보려고 해요. 장기적으로는 책방에서 전문가를 모시고 함께 공부도 하고, 저자를 초대해 북토크도 열면서 계속 배우고 싶어요. 졸업생들과 함께하는 독서 모임도 다시 시작할 계획인데, 그 모임에서 나오는 이야기들도 엮어보고 싶어요.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그 친구들의 경험이 학부생들에게는 제 이야기보다 훨씬 도움이 될 것 같거든요. 그러다 보면 10년은 훌쩍 갈 것 같지 않아요? (웃음)”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이어가겠다는 교수님의 표정에서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가 엿보였어요. 박소현 교수님께서 남겨주신 마지막 인사를 전하며, 스누새는 다음 편지로 찾아올게요.

“이건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한데, 그때그때 작은 즐거움을 찾으면 좋겠어요. 즐거움을 찾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요즘 느끼거든요. 힘들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짬짬이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을 놓지 않고 지내셨으면 해요.”
“그때그때 작은 즐거움을 찾으면 좋겠어요.”
“그때그때 작은 즐거움을 찾으면 좋겠어요.”
답장 (0)
로그인하시면 답장을 쓰실 수 있습니다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