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일곱 번째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것들
본격적인 장마철을 앞둔 6월 29일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자하연 앞이 북적였어요. 안전모를 착용한 사람들이 능수버들을 가리키며 분주히 이야기하고 있었죠. 알고 보니, 스누새도 종종 휴식을 위해 찾았던 자하연 앞 능수버들 세 그루를 벌목하는 날이었어요.

자하연 앞 능수버들은 1975년 관악캠퍼스 조성 초기에 심어졌다고 해요. 지금까지 50여 년간 그 자리를 지키며 학교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에게 휴식과 추억의 공간이 되어주었죠. 능수버들은 물을 좋아하고, 물가에 심으면 물을 정화하는 특성이 있는 데다, 늘어지는 나뭇가지와 초록 잎이 수변과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왔는데요. 어떤 이유로 벌목을 결정했을까요?
자하연 앞 산책, 1975 (출처: 서울대학교 역사 사진집 『서울대 사람들 1946-2016』)
자하연 앞 산책, 1975 (출처: 서울대학교 역사 사진집 『서울대 사람들 1946-2016』)
“버드나무과의 나무는 나이가 들수록 속이 비어가는 특성이 있어서 꾸준히 관찰해왔어요. 식물병원에서 x-ray와 유사한 장비로 능수버들 내부를 단층촬영하고, 위험성을 평가해주셨는데요. 그 결과, 능수버들에 심한 부후(腐朽)가 진행되고 있고, 부러질 위험이 커 벌목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주셨습니다. 자하연 앞 능수버들은 학내에서 상징적인 나무이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나무와 작별할 시간을 충분히 가진 후 풍수해가 오기 전에 베어내게 된 것이죠.” (학술림 류영민 담당관)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킨 나무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쉽지만, 갑작스럽게 내려진 결정은 아니에요. 수년 전부터 줄기 밑동과 내부가 부후해 2020년에는 기둥 속을 보강하는 외과수술을 하기도 했거든요. 그런데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무의 상태가 점차 나빠졌고, 강한 비나 바람에 부러질 수 있기 때문에 베어내기로 했다고 해요.
2021년 외과수술 당시
2021년 외과수술 당시
지난 5월에는 자하연을 떠나는 능수버들이 구성원들에게 오래 기억될 수 있도록 이틀간 ‘굿바이 능수버들’ 이벤트가 열렸어요. 능수버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굿바이 메시지 남기기’, 사진으로 추억을 남기는 ‘능수버들과 함께 인생네컷’ 이벤트에 많은 구성원의 발길이 이어졌는데요.

수많은 사람의 흔적이 남은 굿바이 메시지를 살펴보니, ‘그동안 자하연을 지켜줘서 고마워’, ‘입학부터 졸업까지 함께해서 즐거웠어’, ‘덕분에 바람의 향기를 기분 좋게 즐길 수 있었어’ ‘우리의 그늘과 쉼터가 되어줘서 고마워’ 등 능수버들을 향한 고마움과 아쉬움이 가득 느껴졌어요.
능수버들을 기억하기 위해 열린 ‘굿바이 능수버들’ 행사
능수버들을 기억하기 위해 열린 ‘굿바이 능수버들’ 행사
잠시 회상에 잠긴 사이, 어느새 벌목 작업이 시작됐어요. 안전을 위해 위쪽의 가지부터 밑동까지 조금씩 나누어 나무를 베어냈는데요. 예상했던 것처럼 나무 기둥 속은 대부분 텅 비어있거나 까맣게 변해있었어요. 잘라낸 나무 주위로 모여든 사람들이 있어 가까이 가보니, 컴퓨터공학부 이광근 교수님께서 나무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살펴보고 계셨는데요. 이광근 교수님은 약 30년 전 유학 시절 목공을 접한 후 지금까지 취미 삼아 가구를 만드신다고 해요. 지난 2015년 중앙도서관 관정관이 지어질 때, 도서관 뒷길에 있던 벚나무가 오래 기억될 수 있도록 벤치로 만든 분이시기도 하죠.

“자하연을 오래 지키고 있던 나무가 사라진다고 하니 아쉬워서 베어진 나무로 무언가 만들 수 있을지 살펴보러 왔어요. 그런데 잘린 단면을 보니 부패 정도가 심해서 가구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그래도 능수버들을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나무를 태워 염료로 활용하는 등 다른 방법이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컴퓨터공학부 이광근 교수)
(좌측부터) 벌목 작업, 잘린 능수버들 단면, 상태를 확인하는 관계자들
(좌측부터) 벌목 작업, 잘린 능수버들 단면, 상태를 확인하는 관계자들
작업이 한창이던 때, 방충복을 갖춰 입은 분들이 다가왔어요. 알고 보니, 토종벌이 능수버들에 집을 지어, 벌집을 연구에 활용하기 위해 오신 연구원분들이었는데요. 자하연 앞 능수버들에 토종벌이 산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그리고 어떤 연구를 하시는지 궁금해졌어요.

“저희는 환경대학원 기후연구실 정수종 교수님 연구팀이에요. 기후변화 적응·완화에 벌과 다른 생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알려져 있어서 벌 연구를 하고 있는데요. 지난봄 점심을 먹으러 가다가 능수버들로 들어가는 벌을 발견했어요. 지켜보니 산에 있는 벌이 와서 집을 지은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얼마 뒤에 능수버들을 벌목할 예정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서 연락드렸어요. 그냥 벌목했다가는 안전 문제도 있고, 처리도 쉽지 않기 때문에 저희가 연구를 위해 분양받게 됐죠.” (환경대학원 조유리 선임연구원)

연구팀은 벌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구역에 벌집을 두고 생태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고 해요. 기존에는 양봉용 벌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해왔기 때문에, 자연 서식 벌의 생태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요.

“나무가 사라진 것은 아쉽지만, 능수버들에 집을 지은 벌을 보면서 ‘죽어가는 나무였지만 새 생명이 깃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벌들이 살아갈 터전이 되어주었으니까요.” (환경대학원 조유리 선임연구원)
능수버들에 집을 지은 벌을 살펴보는 사람들”
능수버들에 집을 지은 벌을 살펴보는 사람들
이제 당분간은 자하연 앞을 초록빛으로 물들이던 능수버들을 만날 수 없게 됐어요. 학술림에서는 그루터기에서 돋아나는 움을 키워 자연스럽게 나무를 대체하는 ‘맹아 갱신’과 건강한 나무를 찾아 대체하는 ‘대목 심기’ 두 가지 방법 중 적합한 방법으로 훗날 다시 커다란 능수버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해요.

능수버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여전히 자하연의 풍경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능수버들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 바쁜 일상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여유가 남아 있어요. 그리고 머지않아 다시 새로운 나무와 함께 새로운 이야기와 추억이 자라나겠지요. 자하연 앞을 지켜온 능수버들 덕분에, 캠퍼스에서 함께 살아가는 여러 생명의 존재를 생각해 볼 수 있었네요. 언젠가 흔들리는 능수버들 가지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날을 기다리며, 스누새는 다음에 다시 찾아올게요!
“능수버들아, 안녕!”
“능수버들아, 안녕!”
답장 (5)
  • 조롱이
    조롱이
    사라진 자리의 의미와 소식을 전해주어서 고맙습니다 스누새!
  • 양진이
    양진이
    벌 데려가는 연구원님들 뒷모습이 넘 귀여워요
  • 해오라기
    해오라기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나무가 사라지니 슬프네요. 그래도 작별할 시간을 충분히 준 관계자분들이 정있고 세심하신 것 같습니다.
  • 왜가리
    왜가리
    관악캠퍼스에 하나의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었나 보네요.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주던 능수버들과 작별하는 건 슬프지만 능수버들과 함께했던 50년을 뒤로하고 새로운 나무와 새로운 50년을 기약했으면 좋겠습니다.
  • 밀화부리
    밀화부리
    End of an era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뭔가 큰 획이 그어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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