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한 번째
ENFP 장애인의 캠퍼스 라이프
“제 MBTI는 ENFP예요. 시각장애인이 한국에서 외향형으로 사는 것도, 직관형으로 사는 것도 힘들죠. N을 가진 사람은 ‘오늘 밥 뭐 먹을까?’ 이런 것보다 문학, 외계, 우주 같은 것에 관심이 많거든요. 정리도 서툴고 길치인 사람도 많고요. 언젠간 ‘ENFP 장애인이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도 출간하고 싶어요.”

2017년도 입학 당시 시각장애를 극복한 서울대 신입생으로 언론을 장식하기도 한 김수연 학생은 지난 2월 자유전공학부를 졸업하고 장애인 관련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 영어영문학과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학부 생활의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으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수연 학생을 스누새가 만났어요.
2022학년도 소현학술상 시상식. 왼쪽부터 김상훈 경영대학장, 김수연 학생, 민상기 명예교수
2022학년도 소현학술상 시상식. 왼쪽부터 김상훈 경영대학장, 김수연 학생, 민상기 명예교수
MBTI 성향처럼, 수연 학생은 학부 때 꽤나 다양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왔어요. 2개의 주전공 선택이 필수인 자유전공학부에서는 영어영문학, 경영학을 선택했죠. 그래프와 도형이 많아 시각장애인에게는 벅찬 경영학도 허투루 공부하지는 않았어요. 사회적기업 사례 중심의 ‘장애인 고용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 고찰’이라는 졸업 논문은 경영대 ‘소현학술상’까지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으니 말이에요.

“제가 가진 신체적 한계 때문에 실태 연구나 실험을 통한 논문 작성은 힘들었어요. 대부분 선행연구 논문 등을 활용한 2차 자료로 작성했죠. ‘경영학 원론’, ‘인사관리’ 수업에서 배웠던 인사이드아웃 전략이나 사회적기업 베어베터의 내용에 착안해 논문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논문 쓰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또 다른 수확도 있었어요. 항상 ‘내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작아만 졌는데, 장애가 아무도 겪어보지 않은 도전이 돼,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을 길을 만들어줄 수도 있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된 계기였거든요.”
어릴 때 피아노 연주와 성악하는 수연 학생 모습
어릴 때 피아노 연주와 성악하는 수연 학생 모습
선천성 시신경 위축으로 시각장애 1급을 가진 수연 학생은 음악, 문예 등에도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요. 성악을 하고 싶어 고등학교 2학년까지 공부와 병행하기도 했다고 해요. 하지만 일주일마다 이태리어, 독일어, 불어로 되어 있는 새로운 노래를 익히기에는 너무 힘들었다고 하네요.

“성악을 그만두며 처음으로 꿈이 좌절되는 것을 느꼈어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장애인의 삶을 살기는 싫었어요. 대학 입학 후에도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하루에도 몇백 번씩 찾아오지만 ‘장애 학생은 중도 이탈이 많다’는 편견을 깨주고 싶어 더 열심히 하기도 합니다.”
어릴 때 점자책 읽는 수연 학생 모습
어릴 때 점자책 읽는 수연 학생 모습
어릴 때부터 이미지가 중심인 만화와 영상보다는 자연스레 책을 좋아했다는 수연 학생. 동화도 짓고 커서는 소설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해 보는 걸 즐겼다고 해요. 앤 설리번 선생님의 도움으로 인간 승리를 이룬 시청각 장애인 정도로만 알고 있는 ‘헬렌 켈러’의 삶을 한 인간으로 조명해 분석한 영문학 졸업 논문도 그렇게 쌓아온 시간이 빛을 발한 걸지도 모르겠어요.

“헬렌 켈러 자서전을 읽으며 궁금했던 것이, 눈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는데 상상으로 비유하는 모든 표현이 시각적이고 청각적이라는 점이었어요. 어떻게 그런 상상력이 가능한지 알고 싶었어요. 헬렌 켈러라는 인물에서 시작된 관심이 그녀가 있던 미국과 영문학 또 장애까지 확장돼 대학원 입학까지 고려하게 됐죠.”
번역가를 꿈꾸며 영어영문학과 대학원에 입학한 수연 학생
번역가를 꿈꾸며 영어영문학과 대학원에 입학한 수연 학생
유쾌하면서도 진중하게 얘기하던 수연 학생은 솔직한 당부도 잊지 않았어요.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을 만나면 신체적인 편안함과 도움을 주기 위해 고민하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전 ‘밥 같이 먹자’, ‘공부 힘들다’. ‘논문은 뭘로 써?’라며 일상을 같이 나누는 것이 더 좋거든요.”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적인 영감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재기 발랄한 활동가’가 특징인 ENFP. 장애인의 진솔한 얘기를 하고 싶어 도서 출판과 강연을 꿈꾸며 공연 기획도 하고 싶다는 수연 학생의 성향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네요. 현재 계획하고 있는 일들과 앞으로 꿈꾸며 만들어낼 많은 도전들이 어떠한 난관에도 흔들리지 않길, 그러한 도전 속에서 수연 학생도 지치지 않길 스누새가 응원할게요.
답장 (6)
  • 아비
    아비
    마음이 따뜻해지는 스누새편지 감사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수연학생의 이야기도 감명깊었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서로를 위해주며 어울려가는 세상, 서울대학교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성악도 공부하셨다던데, 서울대학교에서 수학하는동안 성악과에 복수전공,부전공 등으로 공부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꿋꿋이 꿈을 향해 나아가는 서울대학교의 모든 학생들을 응원합니다!!!
  • 꾀꼬리
    꾀꼬리
    읽으면서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네요. 수연씨, 응원합니다!
  • 곤줄박이
    곤줄박이
    아침부터 기분 좋아지는 스누새 편지 잘 읽었습니다. 다재다능한 수연씨의 이야기를 접하고 응원하게 되었어요. 대학원 진학 소식을 이번 스누새를 통해 들었으니 대학원 졸업 이후의 소식도 추후 스누새를 통해 듣고싶습니다.
  • 곤줄박이
    곤줄박이
    저도 ENFP여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장애라는 프레임에 갖히지 않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런 기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글의 서두에 "장애를 극복하였다"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최근에는 장애인권 관련하여 잘 권장되지는 않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 두견
    두견
    읽는 내내 어느 분야에서도 멋있게 빛나고 계신 수연씨가 멋있다고 생각되네요. 앞으로 어떤 길을 택하시든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거위
    거위
    스누새편지를 볼 때마다 항상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네요. 수연님의 밝고 열심히 사시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제각각 처한 환경이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고자하는 긍정적인 마음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서울대 구성원 여러분,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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