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네 번째
세상에 없던 길을 걷다
내가 공부하고 싶은 전공이 학교에는 없다고요? 그럼 ‘학생설계전공’으로 직접 나만의 전공을 만들어보세요. 학생설계전공은 전공 이름, 교과과정과 지도교수까지 모든 것을 학생이 계획하는 전공제도인데 이제 자유전공학부 학생이 아니어도 복수전공으로 이수할 수 있게 된대요!

그런데 이 학생설계전공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대요. 무엇보다 같은 공부를 하는 친구도 없이 몇 년 동안 혼자 공부를 해야 해서 힘들고 외로운 길이래요. 그래서 이미 앞서 그 길을 걷고 있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스누새가 들어봤어요.

“뭔가 특별한 걸 하고 싶었어요. 음식을 좋아해서 ‘음식학’으로 시작했는데, 소셜벤처 학회를 하면서 음식이라는 주제에서도 사회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보자 했어요. 그러다 보니 식량 분배 불균형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됐고 이걸 해결할 방법으로 ‘지속가능한 푸드시스템’이란 주제를 찾게 됐어요.”(지속가능한 푸드시스템 전공, 16학번 양승훈)

“저는 문학도 너무 재미있고 역사도 재미있고 주류 학계에선 잘 다루지 않는 마이너한 문화들에 관심이 있는데, 문화인류학이나 미술사학 같은 기존 전공 한두 개로는 이게 다 다뤄지지 않았어요.”(한국학 전공, 17학번 정영훈)
대학에 들어오기 전부터 학생설계전공에 관심이 있었을 정도로 자신의 관심사가 뚜렷한 학생들이었지만, 설계전공 신청서류 양식들을 열어보자마자 ‘포기할까?’라는 생각부터 들었다고 해요.

“너무 막막해서 선배가 썼던 신청서를 받아서 제 전공에 맞게 고치고 교수님께 갖고 갔는데, 엄청 혼났어요. 되게 형식적이고, 진정성이 없다고요. 그래서 전부 다 지우고 그냥 솔직하게 썼어요. 전 이게 이래서 하고 싶고, 그래서 이렇게 할 거라고. 그랬더니 오히려 잘 썼다고 칭찬해 주시더라고요.”(정영훈)

“교수님을 통해서 관련 분야의 다른 교수님들을 소개받고, 그런 식으로 여러 교수님을 만나 뵙게 됐어요. 그러다가 지금 제 지도교수님과도 면담할 기회가 생겼는데, 제가 하고자 하는 전공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고 조언도 많이 받을 수 있었어요.”(양승훈)

설계전공을 준비하는 데는 교수님들과 전문위원 선생님과 같은 주변 분들의 도움이 정말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고 해요. 아무래도 학생 입장에서는 어느 학과의 어느 교수님이 어떤 연구를 하셨는지 잘 알기 힘들고, 복잡한 서류들을 작성하는 것도 익숙지 않으니까요.
학생설계전공을 한 번쯤 생각해보는 친구들은 많지만,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아무래도 기존 전공보다 인지도도 낮고 여러 전공의 과목을 섞어 듣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하나 봐요. 하지만 그런 고민을 거치면서 자기만의 길을 찾게 되는 것 같았어요.

“‘그냥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으로 설계전공을 하는 건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 생각으로 시작했다가 포기하는 친구들도 굉장히 많이 봤어요. 저도 3, 4학년 때쯤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나 전문성이 너무 없는 거 아닌가?’ 그렇게 무기력에 빠지는 친구들이 많았어요.”(양승훈)

“어떻게 보면 뿌리가 없는 전공이잖아요. 역사와 전통은커녕, 이게 어떤 전공인지 설명하기도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 전공으로 사회에서 성공하긴 어렵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두 번째 주전공으로 ‘역사와 전통’이 있는 경제학을 선택했는데 엄청 후회하고 있어요. 차라리 한국학을 하면서 관심이 생긴 국어국문학이나 인류학, 혹은 생태학을 했으면 더 풍부하고 깊게 공부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았을 텐데…라고요.”(정영훈)
한국학 방언 조사를 하는 영훈 학생(왼쪽)과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현장 답사하는 승훈 학생(오른쪽)
승훈·영훈 학생은 학생설계전공을 시작하기 전에 되도록 많은 교수님을 만나보고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길 권했어요. 특히 내가 생각하고 있는 전공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도 들어보고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요. 기초교육원에서 개설되는 학생자율연구 수업을 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해요.

“학생자율연구 수업을 들어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설계전공을 하면서 할 수 있는 고민들을 컴팩트하게 해볼 기회인 것 같아요. 저도 설계전공 하기 전에 자율 연구 수업을 들었더라면 제가 하려는 공부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더라고요.”(양승훈)
학생설계전공은 ‘모 아니면 도’라고, 두 학생 모두 입을 모아 이야기했어요. 재밌고 쉬워 보이는 강의들만으로 채울 수도 있지만 그럴수록 남는 게 없었다고 해요.

“어중간하게 하면 안 하느니만 못해요. 그냥 ‘내가 원하는 것만 골라서 수업 듣겠다’ 하면 졸업을 쉬워질지 몰라도 남는 게 하나도 없는 전공이 되는 거죠. 하지만 열심히만 한다면 확실히 새로운 길이 보이는 것 같아요. 같은 주제를 놓고도 다각도로 볼 수 있는 장점도 있고요. 내가 단단히 각오하고 어려운 수업도 도전하면서 그 지식을 스스로 쌓아 올릴 독한 마음이 있다면 진짜 얻어가는 게 많은 게 학생설계전공인 것 같아요.”(정영훈)

자기가 생각하는 주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도전하려는 각오가 되어 있다면, 아무나 따라 하기 힘든 나만의 분야를 개척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학생설계전공의 매력인 것 같아요. 설계전공을 고민하는 여러분 모두 ‘도’가 아닌 ‘모’가 나오도록 좋은 선택을 하길 바랄게요.
답장 (13)
  • 뜸부기
    뜸부기
    설계전공은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각자 자기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모습이 멋있습니다!
  • 조롱이
    조롱이
    궁금했던 학생설계전공에 대해 좀더 알게 되었어요. 고등학교 학생들이 질문할 때 잘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누새도 화이팅!
  • 원앙
    원앙
    엄청 용기있는 선택이네요, 가시는 길에 행운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 밀화부리
    밀화부리
    학생설계전공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 어떤 사람들이 하는지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인터뷰해주셔서 너무 좋네요!유익한 정보 잘 알아갑니다ㅎㅎ
  • 양진이
    양진이
    멋있어요~
  • 찌르레기
    찌르레기
    학생 설계 전공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있었는데, 이 인터뷰를 읽고 자신의 경험과 호기심을 바탕으로 당당히 길을 만들어나가는 멋진 학우들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어요. 학생설계전공에 대해 궁금했던 사람들에게 좋은 인사이드를 제공해주는 기사네요 고맙습니다 :D 그리고 응원합니다!
  • 논병아리
    논병아리
    멋있습니다~~ 응원합니다~그리고 학생설계전공에 대해서도 새로 알게 되었고 글을 읽으면서 정말 유익한 시간을 보냈어요~
  • 어치
    어치
    파이어니어 정신 멋있습니다! 앞으로도 즐겁게 공부하세요!
  • 곤줄박이
    곤줄박이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은 고되지만, 청년 시기부터 개척자의 정신으로 학문에 임하는 모습 멋집니다!
  • 메추라기
    메추라기
    도전하는 모습 멋져요! 응원합니다.
  • 비둘기
    비둘기
    멋있네요. 나중에 후속기사 기쁘게 보게될 날 기다립니다!!!
  • 딱따구리
    딱따구리
    전공을 직접 설계하는 것이 쉽지 않을텐데, 정말 멋있습니다!응원합니다~
  • 어치
    어치
    제가 공부하는 공학 분야에서도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 중심 기술로의 변화가 화두인데, 교육도 기존의 학과 분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학생 분들이 원하는 전공을 디자인하는 것이 인상깊었습니다. 학생설계전공에 도전하시는 학생 분들 앞으로의 진로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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