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번째
죽음을 마주하는 시간
최고의 의학자들을 길러내는 우리 학교 의과대학에는 숨은 조력자들도 많이 있어요. 그중 의학도라면 피할 수 없는 시신 해부실습을 위해서 기증자를 찾고, 교육에 용이하도록 시신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꼭 필요한 일을 하고 계신 의과대학 시신기증상담실 김인관 · 최영태 선생님을 스누새가 만났어요.

“시신기증 상담뿐 아니라 고인을 모셔와 방부작업을 하고 실습 준비를 마치는 일까지 해요. 처음에 반년 정도는 너무나 어려웠죠. 시신을 마주하면 기분이 가라앉고 방독면도 쓰고 장갑도 끼지만 옷 깊이 포르말린(방부제) 냄새가 밸 수밖에 없어요. 시보 때는 일을 그만둘까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김인관)

1990년대부터 해부학교실과 법의학교실에서 근무를 시작한 김인관, 최영태 선생님은 이 업무에 30년째인 베테랑이시지만 고인을 마주하는 일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아요.
“작년부터는 고인이 코로나에 감염됐었을 우려가 있어서 기증받는 게 더 힘들어요.”(김인관)
“작년부터는 고인이 코로나에 감염됐었을 우려가 있어서 기증받는 게 더 힘들어요.”(김인관)
이렇게 어렵고 모두가 피하는 일이지만, 해부실습은 의학교육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래요. 의대 학생들은 본과 1학년 1학기에 이 과목을 필수로 들어야 하고 여기서 인간의 근육과 혈관, 조직에 대한 많은 지식을 배우게 되는데, 한 학년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1년에 30여 구의 교육용 시신이 필요한 것이죠.

“90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에 기증을 약속하신 분들이 9,700여 분이 넘어요. 의학교육의 뜻에 동참해주신 분들이 그만큼 많다는 거죠.”(최영태)

숭고한 희생으로 기꺼이 몸을 내어주시기로 약속하신 분들이 하루에도 두세 명씩은 꼭 찾아오셔서 상담을 받으신다고 해요. 선생님들은 그 한 분 한 분을 감사한 마음으로 상담해드리고 있어요.
“기증자의 가족이 밤이든 새벽이든 가리지 않고 연락을 하시기 때문에 24시간 대기중이에요.”(최영태)
“기증자의 가족이 밤이든 새벽이든 가리지 않고 연락을 하시기 때문에 24시간 대기중이에요.”(최영태)
하지만 이런 고인의 뜻에도 불구하고 막상 장례를 치르게 되면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히거나, 적합하지 않은 상태 때문에 난감한 일을 자주 겪기도 하신대요.

“기증 의사를 밝힐 때 가족의 동의를 받지만, 기증받을 때 찾아가면 일부 가족은 모르는 경우가 있어요. 형제들은 동의하는데 자녀들이 반대하는 경우도 있고…. 멀리 한달음에 달려왔지만, 그런 갈등이 있으면 우리는 일단 물러나 가족끼리 합의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죠.”(최영태)

“고인을 이미 모셔왔는데 몇 개월 후에 자녀들이 찾아와 아버지를 내놓으라 했던 일도 있었어요. 고인을 우리가 소유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렵게 모셔왔더라도 인계해드릴 수밖에 없어요.”(김인관)

가족이 모두 동의하더라도 고인이 해부실습에 적합한 상태가 아닌 경우도 있어요. 원활한 교육을 위해 차려자세가 가능해야 하는데 허리가 너무 굽어 똑바로 눕지 못한 상태로 눈을 감으셨든지, 오랜 병상 생활로 근육이 빠져버려 실습이 어려운 경우가 요즘 들어 부쩍 늘었어요. 그렇게 신중히 고려해서 모시다 보니 열에 서너 건만 정상적인 기증이 가능하대요.
의과대학 내 충효당에 임시로 모신 기증자가 400여 분이 된다고 해요.
의과대학 내 충효당에 임시로 모신 기증자가 400여 분이 된다고 해요.
누구나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을 오랜 기간 맡아오신 두 선생님. 어떤 순간에 가장 보람이 있으신지 물어봤어요.

“우리가 준비한 실습이 잘 마무리될 때, 학생들이 불만 없이 실습을 끝낼 때 그때가 가장 기쁘고 뿌듯해요. 실습을 마무리하고 화장까지 해서 고인을 모시면 한 학년이 다 끝났구나 하죠. 다른 건 없어요.”(최영태)

“다른 분들께서 ‘어려운 일 한다’, ‘고생한다’ 한 마디 해주시는 것이 큰 힘이죠. 우리가 하는 일을 인정받는다 그런 느낌들이 참 힘이 돼요.”(김인관)
스누새가 머문 짧은 순간에도 우리 학생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기증하겠다는 상담 전화가 이어졌어요. 숭고한 마음을 정성으로 응대하고, 고된 일임에도 죽음을 마주하는 시간을 기꺼이 감내하는 두 분 덕분에, 오늘도 의과대학 학생들은 좋은 의사가 되는 한 발짝을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의학의 가장 근본이며 의술의 시작인 해부학 실습을 앞두고 있습니다. 실습을 위하여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당신들의 몸을 흔쾌히 저희의 배움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게 저희는 어떠한 말로도 그 고마움을 표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저희는 의술을 한낱 돈벌이의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환자들의 육체적인 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까지 어루만질 수 있는 의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시신을 기증해 주신 분들이 베풀어주신 넓은 뜻을 헤아려 날카로운 눈과 용감한 마음 그리고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로 의학을 배울 것을 다짐합니다.
- 해부학실습을 앞두고, 위령제 추도문 중
답장 (22)
  • 올빼미
    올빼미
    스누새 메일로 자주 보는데...다양한 분들의 하는 일과 노고를 느낄 수 있어서 좋습니다. 특히 이번은 교내 잘 모르던 분들이라 더 그렇군요~
  • 백학
    백학
    의대에서 근무하면서 두 분의 선생님을 종종 뵈었는데, 이렇게 자세한 내용은 스누새의 편지를 받고 알았어요. 매번 스누새 편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 두루미
    두루미
    예비 의사들을 위해 목숨만큼 가치 있는 기증을 결정하신 분들도, 매번 편치 않을 마음을 달래면서 묵묵히 어려운 일을 해주신 두 분도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네요.. 아침에 메일 읽으면서 괜히 감동 받아 울컥했어요. ㅎㅎ 뒤에서 애써주시는 두 분이 있어 사람 목숨을 구하는 훌륭한 의사들이 나올 수 있는 거겠죠. 응원합니다~
  • 솔개
    솔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분들의 기증과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어요
  • 밀화부리
    밀화부리
    정말 뭉클하네요. 기부해주시는 분들과 그 가족들의 마음도, 그리고 두 선생님의 정성스러운 마음도 정말 감동입니다... 이렇게 꼭 알아야하는 이야기를 전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시는 분들을 기억하면서 잘 살아야겠습니다!
  • 꾀꼬리
    꾀꼬리
    이런 직업도 있군요~ 전혀 생각도 못했습니다... 정말 어려운 일일텐데 존경스러워요 (;∇;) 한국에서 훌륭한 의사의 탄생, 의학의 발전도 시신기부담당실 선생님들의 공이 크겠습니다!감사드리고 화이팅하십시오☆☆☆
  • 따오기
    따오기
    의대 학생들의 해부학 실습에 힘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매번 스누새 편지를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은데 감사드려요!
  • 원앙
    원앙
    위령비 사진을 보니 마음 한켠이 더욱 먹먹해집니다. 우리나라 의학의 발전을 위해 희생해주신 모든 영령들께 저 또한 감사드립니다.
  • 꾀꼬리
    꾀꼬리
    최영태, 김인관 선생님 존경스럽고 감사합니다. ^^
  • 해오라기
    해오라기
    졸업생이지만 교내 다양한 분들 소식을 들으니 너무 반갑고 좋네요.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동고비
    동고비
    마음이 따듯해져왔습니다. 어려운 일을 음지에서 묵묵히하고 계신 분들의 따뜻한 마음에 고개가 숙연해졌습니다. 우리대학은 이런분들 덕분에 더욱 빛이 나고 잘 유지되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스누새의 수고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우리대학의 좋은 소식 많이 보내주세요~~~
  • 곤줄박이
    곤줄박이
    저도 막연하게 나중에 죽으면 시체기증 해야지 하는 생각만 갖고 있었는데 이런 분들이 고생해주시는거였네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 꾀꼬리
    꾀꼬리
    쉽지않은 주제에 쉽게 공감할수 있도록 기사가 구성되어 좋았어요. 시신기증이 갖고 있는 다양한 관계와 과정 그리고 의학교육에의 기여가 잘 담긴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 닭
    선생님들 항상 수고가 많으십니다. 오늘도 스누새덕분에 새로운 세계를 알아갑니다!
  • 해오라기
    해오라기
    고된 일을 하는 분들과 기증을 하는 분들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해준 스누새 고마워요!
  • 까마귀
    까마귀
    기증해주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학교에서 이런 작업을 수행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걸 이 기사를 통해 처음 알았네요. 선생님들도 기사도 감사합니다
  • 개개비
    개개비
    보다 큰 뜻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쳐 연구에 내어주신 기증자분들과 가족분들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이렇게 감사한분들을 진심을 다해 감사함을 표현하며 존경해주시고, 그 뜻을 이어가주시는 김인관 선생님, 최영태 선생님 같은 분들이 계셔서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하셔도 정말 고된일일텐데 그 노고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
  • 딱따구리
    딱따구리
    서울대의 유퀴즈를 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다뤄주신 덕분에 매일 타는 지하철에서 신선하고도 낯선 순간을 가졌네요. 아마 시신을 기증하신 분들도 두 선생님의 숭고한 안내 속에서 안심하시며 가시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 곤줄박이
    곤줄박이
    두 분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 거위
    거위
    코로나로 인해서 이러한 어려움도 생겨났다는 것을 새롭게 알 수 있었습니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분야였는데 직접 일하시는 분을 통해서 시신 기증의 어려움을 저도 느껴볼 수 있었고 저도 숭고한 뜻을 이어받아 시신 기증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정말 큰 뜻을 가지고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주시는 기증자분들께 감사합니다.
  • 원앙
    원앙
    뭉클하네요.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논병아리
    논병아리
    숭고한 선택을 하신 고인분들
    그 선택에 기꺼이 동의하신 가족분들
    그리고 그 선택이 헛되지 않게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두 분
    의료 관계자 여러분들과 학생들의 열과 성으로
    이 나라의 의술이 발전하여
    수많은 생명들를 구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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