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번째
단풍이 가장 좋을 때는
아침 바람이 차가워지고, 곳곳의 나무가 붉게 노랗게 물들면 어느덧 캠퍼스에도 가을이 와 있습니다. 때로는 중간고사에 집중하느라 가을을 채 느끼지도 못하고 흘려보내기도 하는데요. 우리 학교에 벌써 10년째 가을을 놓치지 않고 연구해 온 교수님이 있어 찾아가 봤어요!

환경대학원 정수종 교수님은 자신을 ‘기후과학자’라고 소개해요. 교수님은 특히 가을의 상징, 단풍이 드는 시기를 인공지능 모델링으로 예측해 주목을 받았어요. 산림청과 함께 전국 수목원 열 곳 256종 나무의 데이터 10년 치로 딥러닝 알고리즘을 활용해 분석을 진행했답니다. 그 결과, 어느 분석보다도 높은 정확도의 단풍 시기 예측을 해냈지요.

“일반적으로 단풍 시기를 예측하는 기상청 데이터는 도시에 있는 측정망을 기반으로 해요. 그러다 보니 도시에서 발산하는 열 같은 변수의 영향을 받아서 정확도가 다소 떨어질 수 있죠. 반면 우리는 나무 그 자체의 데이터를 사용하기 때문에, 모델의 예측이 좀 더 정확할 수 있었죠.”
지난 9월 발표한 단풍 예측지도는 많은 연구자의 누적된 데이터를 분석하고 여러 변수를 통제한 후 탄생할 수 있었어요.
지난 9월 발표한 단풍 예측지도는 많은 연구자의 누적된 데이터를 분석하고 여러 변수를 통제한 후 탄생할 수 있었어요.
각 수목원 담당자들이 10년간 매일 나무의 상태를 기록하고 사진으로 남기면, 교수님은 이것을 스물일곱 개 변수를 기반으로 분석하고, 사람이 잘못 기록했을 가능성에 대비해 사진 속 나무의 색채 분석도 함께 진행했다고 해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써 내려간 필체가 강력한 기후 예측 도구로 거듭나는 순간이었죠.

“인간은 극심하게 추워지거나 더워질 때 기후변화가 느껴진다고 표현하잖아요. 그런데 식물은 훨씬 작은 변화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해요. 꽃이 빨리 지고, 나무가 며칠이고 더 늦게 물드는 것은 그런 반응의 결과랍니다.”

사실 정수종 교수님의 주 연구 관심사는 ‘기후변화’와 ‘온실가스’에요. 교수님은 생태계의 피드백 작용(feedback effect)이 기후 연구에서 아주 중요한데 그동안 많이 간과돼왔다고 말했어요.

“생태계는 기후변화를 겪기만 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에요. 생장에 따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도 하고 배출하기도 하니까요. 그 밸런스가 기후변화를 설명함에서도 꽤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많은 미래 보고서에서 생태 변수는 빼놓은 채 ‘평균 기온이 1도 오른다’라는 식으로 예측해 왔는데, 사실 식물의 피드백 작용이 반영되면 그 예측이 틀린 것일 수도 있죠.”
“많은 미래 보고서에서 생태 변수는 빼놓은 채 ‘평균 기온이 1도 오른다’라는 식으로 예측해 왔는데, 사실 식물의 피드백 작용이 반영되면 그 예측이 틀린 것일 수도 있죠.”
대기과학으로 박사과정을 공부하다 생태계에서 기후변화의 원인을 찾는 기후과학의 중요성을 알게 되셨다는 교수님. 미국에서 대기해양 연구모델링을 마치고 서울대에 부임하신 후 흥미로운 수업을 진행했어요. 한 학기 동안 캠퍼스 내 나무 하나를 콕 찍어 일주일에 한두 번씩 꼭꼭 사진을 찍게 하고, 이미지 속 나무의 색을 분석해 녹색의 비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관찰하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학생들의 참여 의욕이 활활 타올라서, 드론을 띄우는 친구들도 있고, 건물의 정면과 측면 나무를 각각 비교해가며 일조량을 계산해 수치를 내는 학생들도 있었다고 해요.

“미국에는 내셔널 피놀로지(National Phenology Network)라는 시민 과학을 하는 그룹이 있어요. 누구나 내 주변에서 기후변화를 측정하고, 기록하는 것이죠. 시민 과학은 사람들에게 기후변화를 더 이해시키고 문제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해요. 그런 이유에서 학생들에게 캠퍼스 안의 나무를 관찰하게 하는 것이고요.”
220동 앞에서 대기 중 CO2, CH4, CO 분석 작업을 진행하는 기후융합과학연구실 학생들과 정수종 교수님
220동 앞에서 대기 중 CO2, CH4, CO 분석 작업을 진행하는 기후융합과학연구실 학생들과 정수종 교수님
정수종 교수님에게는 최근 미세플라스틱 이슈가 떠오르면서 사람들의 일상이 변하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고 해요. 미래 세대인 10대들이 물건의 플라스틱 함량을 세세하게 살피는 모습을 보며 온실가스 문제도 사회적으로 제대로 인지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하셨답니다.

우리 주변의 소재를 토대로 세상을 바꾸어갈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전히 화력발전소가 지어지는 등 환경에 역행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런 문제들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방식으로 필요한 지식을 대중에게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왜 온실가스가 위험한지, 기후변화 원인은 무엇인지가 모두 반드시 전달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연구자로서 제가 할 일이겠죠.”

정수종 교수님과 연구실 학생들을 만나보고 싶다면 매일 해가 드는 시간에 연구실이 있는 220동 앞을 지나면 마주칠 수 있어요. 대기 중 빛의 파장을 분석해 대기 정보를 수집하고 있거든요. 또 내년에는 연구원들과 아라온호에 올라 두 달 동안 극지 탐사에도 나설 예정이에요. 빙하가 녹는 원인과 이후 벌어질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대비할 방안을 연구하기 위해서예요.
서울대학교가 개발해 남산타워 꼭대기에 설치한 온실가스 측정장치 ‘SNUCO2M’. 이 장비에서 매일 측정해 공개하는 CO2 값은 당일의 온실가스 수치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정보에요.
서울대학교가 개발해 남산타워 꼭대기에 설치한 온실가스 측정장치 ‘SNUCO2M’. 이 장비에서 매일 측정해 공개하는 CO2 값은 당일의 온실가스 수치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정보에요.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여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인간에 의한 양은 얼마만큼 규제하는 것이 맞는지. 과학적으로 그 양을 제시하는 것이 연구자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아직 할 일도 많고, 갈 길도 멀어 보입니다.”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작지만 큰 걸음을 시작한 정수종 교수님. 생태계에서 기후 문제의 열쇠를 찾고, 과학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많은 사람이 생활 속에서 변화할 수 있게 하고 싶다는 교수님의 바람이 이뤄지기를 스누새가 응원할게요.
답장 (6)
  • 솔개
    솔개
    무엇보다도 단풍이 드는 시기를 인공지는 모델링으로 예측하였다는 점은 너무 큰 성과인거 같습니다.
    기상청이 좀 더 배워냐 겠어요 ㅋㅋ
    이 자료를 기반으로 단풍철에 교통량을 예측하여 생활에 편리함이 시너지로 일어났으면 하네요(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국토교통부, 도로공사 등 ㅎ)
    또한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고 일상생활에서 실마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너무 훌륭한 생각이시네요
    환경대학원 정수종 교수님과 학우들이 이 생태계를 지키려는 노력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 올빼미
    올빼미
    우리나라에도 우리나라 기후에 적합한 기후 예측 모델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는데, 역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연구하는 분들이 계셨네요!화이팅입니다
  • 거위
    거위
    전국에 수많은 산악회 회원들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되겠네요^^
    단풍 예측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기후 변화에 따른 수목의 생태계 변화 연구에도 많은 기여를 하게 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교수님과 연구자들의 연구를 응원합니다.
  • 마도요
    마도요
    정말 흥미로운 연구네요!저도 기회가 된다면 나무사진찍기 활동 같이 해보고 싶어요:) 유익한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오리
    오리
    인공신경망을 학습시키기 위해 큰 데이터가 필요한데 단풍 데이터를 모아둔 곳을 찾아 적절하게 사용했다니 대단합니다.
  • 나무발발이
    나무발발이
    학교에서 보내는 다른 대용량 메일은 읽지 않고 차단하는데, 스누새는 올 때 마다 챙겨 읽어요.
    코로나로 많은 활동이 침체된 지금 다양하고 알찬 소식 많이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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