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다섯 번째
프랑스 남자, 한국 여자 “우린 캠퍼스에 살아요”
초록빛이 점점 짙어지는 5월이에요. 가정의 달을 맞아 이번에는 캠퍼스 속 진짜 가족을 찾아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향한 곳은 바로 관악학생생활관 가족생활관! 가족생활관은 기혼 대학원생이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제공되는 기숙사인데요. 새벽같이 날아간 가족생활관 근처에서 일찍이 나와 달리고 있는 두 사람이 눈에 띄었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환경대학원에서 환경관리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개도국 에너지 전환에 관해 연구하고 있는 배누리라고 합니다.” (배누리)

“저는 누리 남편 프랑수아(Francois)예요. 프랑스 사람이고요. 중국 하문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지금은 환경대학원 환경계획연구소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에너지 경제를 연구하고 있어요.” (프랑수아)
환경대학원 방문연구원 프랑수아(좌), 박사수료생 배누리(우) 부부
환경대학원 방문연구원 프랑수아(좌), 박사수료생 배누리(우) 부부
배누리, 프랑수아 부부는 2022년 10월부터 가족생활관에서 살고 있다고 하는데요. 연구실까지 걸어서 15분이면 충분하고, 멋진 자연으로 둘러싸여 있어 만족도가 아주 높다고요.

“프랑수아는 집에서 연구실을 오가는 매일매일 ‘우린 너무 좋은 곳에 살고 있어’ 하고 이야기해요. 둘이 살기엔 공간도 넉넉하고, 이웃들도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고,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조건도 좋고요. 안정적인 환경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줘요.” (배누리)

“원래 저희가 장거리 연애 중이었는데, 누리가 학교에 가족생활관이 있다고 해서 정말이냐고 다시 한번 잘 알아보라고 했어요.(웃음) 프랑스나 중국에는 기숙사는 있지만, 가족만을 위해 구분된 공간은 없거든요. 와서 지내다 보니 정말 좋아요. 베란다가 두 개라 한 곳에는 식물을 키우고, 한 곳에서는 아침을 먹는데 그럴 때마다 행복하다고 느껴요.” (프랑수아)
가족생활관에서의 아침(좌), 지인들과 함께한 저녁(우)
가족생활관에서의 아침(좌), 지인들과 함께한 저녁(우)
두 사람은 2015년, 교환학생으로 간 중국에서 처음 만났어요. 누리 씨는 국제경제학 학사, 프랑수아 씨는 국제경영학 석사 공부를 하고 있었죠. 정규 수업은 겹칠 일이 없었지만, 두 사람을 함께 아는 친구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됐고 관심사가 비슷해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고요.

“동선이 비슷했어요. 둘 다 언어를 좋아해서 중국어 코스에 가면 누리가 있고, 누리가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하는데, 저는 듣는 것을 좋아해서 학교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리면 옆에 가서 듣고, 그렇게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호감이 생겼어요.” (프랑수아)

“그렇게 3개월 정도 연애하고 각자 본국으로 돌아가게 됐어요. 오래 만난 게 아니었으니 서로 잊힐 것으로 생각하고 헤어졌죠. 그런데 생각보다 마음이 깊었는지 잊히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같은 학교에 저는 석사로, 프랑수아는 박사로 지원했고 운이 좋게 둘 다 합격해서 중국에서 재회하게 됐어요.” (배누리)
즐거운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갔던 연애시절
즐거운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갔던 연애시절
코로나19가 시작되고, 누리 씨가 우리 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되면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두 사람은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됐어요.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언제 어떻게 장거리 연애를 끝내고 함께 지낼 수 있을지 막막하던 차에 가족생활관에 대해 알게 됐죠.

“연구실 분들이 결혼한 대학원생에게 제공되는 가족생활관이 있다고 알려주시더라고요. ‘장거리 연애를 끝낼 방법을 찾았어!’ 하고 프랑수아에게 이야기했고, 다행히 프랑수아가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한국에 오게 됐어요. 2022년 7월 프랑스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그해 10월부터 함께 살게 됐죠. 가족생활관 덕분에 저희 결혼 시기가 정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배누리)
프랑수아의 고향마을에서 2박 3일 일정으로 진행된 두 사람의 결혼식
프랑수아의 고향마을에서 2박 3일 일정으로 진행된 두 사람의 결혼식
지금 두 사람은 우리 학교 환경대학원에서 기후·에너지 관련 금융이 개도국에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 방법이 지속 가능한지를 연구하고 있어요. 누리 씨는 광물자원이 풍부한 콩고민주공화국에 어떤 금융이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는지를, 프랑수아 씨는 중국에서 어떤 국가에 어떤 발전소를 수출하고 있는지를 주제로 연구한다고요. 그렇다면 두 사람은 어떻게 환경,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을까요?

“저는 프랑스 시골에서 자랐어요. 농부이셨던 할아버지를 도와 트랙터도 몰고, 자연을 뛰어다니면서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1년 정도 인도에 공부하러 갔는데, 그때 뉴델리의 쓰레기 문제가 단지 환경이 아닌 사람들의 삶의 문제라는 것을 직접 보게 되었어요. 특히 어린아이들이 생계를 위해 쓰레기 산을 뒤지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죠. 그러면서 개도국에서 환경과 사회 문제 모두를 위한 해결책을 찾는데 관심이 생겼어요.” (프랑수아)

“사실 저는 환경, 개도국, 에너지에 관심이 많지 않았는데 프랑수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첫 데이트 때부터 프랑수아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제 생각을 묻더라고요. 사실 그때 저는 대학교 3학년이었고, ‘어떻게 빨리 취업하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처음에는 배부른 고민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프랑수아가 계속 세상에 관해 이야기하고, 길을 걷다가 쓰레기를 줍고, 제가 남긴 밥을 조용히 가져가서 먹는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의 진심을 알게 되고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진로까지 바꾸게 됐죠.” (배누리)
연구실에서의 두 사람
연구실에서의 두 사람
‘대학원생’ 하면 연구, 논문, 과제에 파묻혀 힘든 일상을 보내는 장면이 먼저 떠오르는데요. 스누새가 가족생활관으로 날아갔을 때 새벽같이 일어나 달리던 두 사람은 과연 어떤 일과를 보내고 있는지 궁금해졌어요.

“연구실마다 분위기가 다른데, 저희 연구실은 엄청 자율적인 분위기예요.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서도 다르겠지만, 저희는 보통 5시 30분에 일어나서 낙성대공원 한 바퀴를 달리고, 씻고 집을 나서면 7시에서 7시 30분쯤 연구실에 도착해요. 웜업을 위해서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읽으면 8시가 되죠. 8시부터 9시까지는 책을 읽는데요. 사실 대학원생은 시간이 있으면 논문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책을 읽으면 죄책감이 들거든요. 그런데 연구를 하면서 책을 안 읽으면 뇌가 딱딱해지고, 상상력이 덜 발휘된다고 생각해서 시간을 내서 읽어요. 이때는 주로 한 시간에 두 페이지를 읽을까 말까 한 어려운 책을 읽고요. 9시부터 11시까지는 논문검토를 해요. 그리고 점심을 먹고, 피아노를 치고, 제가 조교라 행정업무를 하면서 오후에 집중할 준비를 하죠. 2시부터 6시까지는 양적 연구를 위한 방법론 공부를 해요. 그러고 나면 집중력과 체력이 소진되어서 집으로 가고요. 요리해서 저녁을 먹고, 하루를 정리하는 불렛저널(다이어리)을 쓰고, 요가를 하고서 9시나 9시 30분쯤 자러 가는 편이에요.” (배누리)

막힘없이 일과를 이야기하는 누리 씨를 보면서 벌어진 부리를 다물 수 없었어요. 두 사람의 일상을 담은 유튜브 채널 ‘봉수아 누리’에서 매일의 계획과 실천을 어떻게 기록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데요. 중국 유학을 끝내고 한국에 와서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을 잘 조율하며 나아가기 위해 기록을 시작했다고 해요.

“하문대학교는 하문 섬이라는 휴양지에 있어서, 분위기가 대체로 자유롭고 편안하거든요. 그런데 한국에 오니 다들 너무 열심히 살더라고요. 아침 7시 30분에 연구실 문을 열면 이미 한창 연구를 하고 계신 분도 있고요. 돌아보면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느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그때 마침표를 찍고 나아가기 위해서 불렛저널을 쓰기 시작했어요. 나를 잘 알고,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고, 나를 받아들이기 위해서요.” (배누리)
누리 씨의 불렛 저널, 왼편에는 계획을 오른편에는 실제 하루를 기록한다.
누리 씨의 불렛 저널, 왼편에는 계획을 오른편에는 실제 하루를 기록한다.
앞서 들려준 일과에서 알 수 있듯 두 사람은 취미도 많은데요. 바쁜 일상임에도 달리기, 피아노, 요리, 요가와 같은 취미를 지속하게 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취미의 공통점을 찾아보니까, 생각을 멈추고 감각을 여는 일이더라고요. 제가 원래 이성적인 뇌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닌데, 대학원생은 논리적으로 주장해야 하니 이성적인 뇌를 쓸 수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제가 생각이 정말 많아서 그걸 멈출 수가 없는데, 피아노를 치고, 달리고, 요리할 때는 진짜로 쉬는 느낌이 들어요. 특히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하는데, 추상적인 세계에 다녀온 것 같은, 더 자유로워진 느낌을 받아요.” (배누리)

“저는 원래 운동과 요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제 취미생활은 누리에게서 왔죠. 누리와 함께 달리고, 요리를 도와주면서 그런 것들이 제 취미가 됐어요. 장거리 연애를 할 때 달리기가 힘들었는데, 누리가 영하 20도에도 달리러 나가는 사진을 보내주면서 동기부여를 해줬어요.” (프랑수아)
마라톤에 참가한 두 사람과 피아노 연주 중인 누리 씨
마라톤에 참가한 두 사람과 피아노 연주 중인 누리 씨
누리 씨가 프랑수아 씨에게 영감을 받아 환경에 관심이 생긴 것처럼, 프랑수아 씨는 누리 씨에게 좋은 생활 습관을 배웠다고 해요. 서로의 좋은 점을 존중하고, 닮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요. 두 사람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family의 어원을 찾아봤는데, 라틴어로 famila, ‘to serve’라는 의미이더라고요. 한국어로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대가 없이 준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하고자 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서로 지지하고, 서로가 더 강해질 수 있도록 돕는 사이. 그게 가족이 아닐까요?” (프랑수아)

“저희가 24시간 7일 항상 붙어있는데도 잘 지낼 수 있는 것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나는 이런 부분에서 너에게 영감을 받아’ 하고 표현해주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가족이란 상대가 과거에 어땠고, 현재에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의 잠재력을 존중해주는 것이 아닐까 해요. 그 사람 안에서 내가 보지 못하는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고, 일어날 것인데 과거와 현재로 판단하지 않고 잠재력을 존중해주는 것이 배우자, 나아가 부모로서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배누리)
“서로 지지하고, 서로가 더 강해질 수 있도록 돕는 사이. 그게 가족 아닐까요?”
“서로 지지하고, 서로가 더 강해질 수 있도록 돕는 사이. 그게 가족 아닐까요?”
두 사람은 앞으로의 상황과 타이밍, 그때 만나게 되는 인연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것 같다고 말했어요. 안정감, 정착에 가치를 두기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라는데요. 마지막으로, 연구와 공부에 집중하면서,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두 사람의 목표는 무엇인지 들어봤어요.

“저 같은 경우는, 서로를 존중함으로써 나를 존중하고, 서로를 돌봄으로써 나를 돌보고, 그렇게 서로를 살피며 나를 알아가는 것이 삶의 목표예요.” (프랑수아)

“연구는 개인의 고유성을 뾰족하게 만드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연구자로서 그 고유성을 길러나가면서 스스로 ‘안위(well-being)’을 만들어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예요. WHO에서 well-being의 정의를 ‘나 자신을 잘 인지하고, 일상의 작은 스트레스에 잘 대처하고, 생산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업무를 해내고, 내가 하는 일이 공동체가 나아가는데 기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상태’라고 발표했더라고요. 정말 많이 공감했어요. 개인을 잘 가꾸는 것이 결국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믿거든요. 그러기 위해서 무엇이든 좀 덜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는 더 많이 가지기 위해 경쟁하느라 항상 갈증 상태인 것 같은데, 더 하기보다는 ‘덜 하는 데서 오는 풍요로움’을 인지하고 지켜나가면 결국 공동체를 위한 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배누리)
답장 (9)
  • 거위
    거위
    두분이 서로 의지하고 도움주고 행복할 수 있는 spouse 관계이자 사람이라는 것에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네요. 메일 홍보를 통해 글을 접했는데 재밌고 감명있게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앞날 보내시고 SNU에서도 활기차시길 바라고, 사회에 연구 및 에너지로서/써 기여하실 미래가 기대됩니당
  • 동고비
    동고비
    서로를 존중하고 일상을 알차게 보내는 두 분을 보면서 감명을 받았어요~~^^ 해야할 일과 하고싶은 일을 적절히 조율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참 좋네요~~ 앞으로도 예쁘게 사랑하시고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 전달해주세요~~^^
  • 오리
    오리
    오 너무 멋져요 저도 바쁜 일상에 운동 독서 챙겨봐야겠어요
  • 곤줄박이
    곤줄박이
    부부가 서로 긍정적인 자극이 될 수 있다는 관계가 너무 멋지네요. 응원합니다.
  • 할미새사촌
    할미새사촌
    서로 존중하고 의지하며 정말 멋진 삶을 살고 계시네요. 지금처럼 언제나 행복하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 두루미
    두루미
    사랑스러운 일상을 상상하게 해주셔서 행복한 기운을 얻어요~
  • 곤줄박이
    곤줄박이
    웰빙에 대한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리고 하루종일 붙어있어도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랑 멋있어요~
  • 두루미
    두루미
    정말 감명 깊게 잘 봤습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네요. 이렇게 열심히, 또 아름답게 사시는 분들이 제 근처에 계시다니.. (저는 기숙사생이거든요) 많은 영감 받고 갑니다. 좋은 콘텐츠 감사합니다.
  • 독수리
    독수리
    고유성을 기르면서도 well-being 을 만들어간다는 마지막 말에 공감을 해요. 각박할수있는 캠퍼스 생활에 서로 의지하고 연구하는 부부 정말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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