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두 번째
입학식 없이 졸업합니다!
2020년, 새내기 생활을 앞두고 기대감에 부풀었던 친구들에게 상상하지 못한 날들이 펼쳐졌어요. 코로나19로 입학식도 취소되고, 수업도 집에서 들어야 했죠. 3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완전한 캠퍼스 생활을 누릴 수 있었는데요. 스누새가 어느덧 졸업을 앞둔 20학번 친구들을 만나봤어요.

“2020년은 정말 외로웠던 것 같아요.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날 거란 기대가 컸는데 그럴 수 없었고, 1학년이라 대학 생활에 대해 아는 것도 많지 않았고요. 그런데 한편으론 저를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 내가 뭘 좋아하고, 대학에선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를 고민할 수 있었죠.” (정재은, 언어학과 20)

“수험생활에 지쳐 있어서 쉴 수 있다는 생각에 당장은 좀 좋기도 했어요. 그런데, 학교에 가지 못하는 시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죠. 요즘 내 또래들은 어떻게 지내고, 무엇을 하며 사는지 모르는 채로 지냈던 게 마음에 남아요.” (노시현, 경제학부 20)

“당시에는 교수님도, 가족들도 ‘코로나 학번’이라고 안쓰럽게 보셨고, 비교할 시절이 없으니까 아쉬운 줄 몰랐어요. 3학년부터 축제도 하고, 캠퍼스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직접 경험하다 보니 오히려 졸업을 앞둔 지금 가장 아쉬워요.” (차윤지, 작곡과 20)
(왼쪽부터) 경제학부 노시현, 언어학과 정재은, 작곡과 차윤지
(왼쪽부터) 경제학부 노시현, 언어학과 정재은, 작곡과 차윤지
대학생이 되면 꼭 해보고 싶었던 것들도 로망으로만 간직해야 했어요. 2년 반 동안 서로의 모습을 모니터로 바라보며 수업했는데, 비대면으로 수업하던 초기에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았다고요.

“학과마다 소소한 전통이 있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 면접을 보러 학교에 왔을 때 선배들이 응원해 주고 사탕을 나눠주셨어요. 저도 ‘나중에 입학하면 저 일부가 될 수 있겠지’ 했는데, 선배들에게 이야기를 듣거나 배울 기회가 없어 아쉬웠어요.” (정재은)

“저는 작곡과인데, ‘시창청음’이라는 실기 수업이 있어요. 비대면 수업이니 교수님께서 화면에 악보를 띄워주시면 화음을 맞춰 다 같이 노래를 불러야 했는데, 몇 차례 시도를 해봐도 결국 돌림노래가 되더라고요. 결국은 마이크를 끄고 각자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있어요.” (차윤지)

코로나19 시기를 잃어버린 시간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친구들은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할 수 있는 활동을 찾으려 노력했어요.

“저는 모의 UN 동아리에 가입했어요. 국제 정치 이슈를 선정해서 연극 형식으로 연습하고, 실제로 대학로 무대에 연극을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됐어요. 모두 모일 수 없으니, 파트별로 연습하고서 연극 전날 최종 연습을 하는데 각 파트끼리 연결되는 부분을 몰라서 우왕좌왕했던 게 기억나요.” (노시현)

“워낙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학회, 동아리에 많이 참여했어요.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영문 극회인데요. 밀폐된 공간에서 연습할 수 없어서 버들골에서 발성 연습을 하고, 공연 당일에는 관객을 초대할 수 없어서 온라인 생중계로 공연했어요.” (정재은)

“입학하자마자 여자축구부에 가입했어요. 실외 활동이라 실내보다 제약은 덜 했지만, 운동장에서 마스크를 쓰고 연습해야 했죠. 매년 열리던 대회도 인원 제한이 생겨 저는 출전을 못 했던 것도 아쉬운 기억이에요.” (차윤지)
무대에서도, 운동장에서도 마스크를 벗을 수 없었던 재은 학생의 영문극회(좌), 윤지 학생의 여자축구부(우) 활동
무대에서도, 운동장에서도 마스크를 벗을 수 없었던 재은 학생의 영문극회(좌), 윤지 학생의 여자축구부(우) 활동
세 친구는 동아리 활동뿐만 아니라 학교를 알리는 학생 홍보대사, 나라를 지키는 학군단에 지원해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도 했는데요. 각 활동도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고요.

“학교를 더 알고 싶어서 학생 홍보대사에 지원했어요. 학생 홍보대사의 주요 업무가 견학인데, 슬프게도 저는 한 번도 대면 견학은 진행하지 못했어요. 정기견학도 비대면으로 진행했는데, 해리포터 복장을 하고서 열정적으로 견학을 마친 후에 텅 빈 강의실에 함께 진행한 친구와 단둘이 남아서 서로를 보고 그저 웃기만 했죠.” (노시현)

“저도 학생 홍보대사 활동을 했는데요. 코로나19로 학교에 올 일이 잘 없다 보니까 학교에 애착을 갖고 싶어서 지원했어요. 저는 중간부터 대면 견학을 하게 됐는데, 경험이 있는 선배가 남아있지 않아서 스크린 켜는 법, 마이크 잡는 법 하나하나 부딪히면서 배웠어요.” (정재은)

“저는 전부터 대학 가면 학군단에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육군 중령 출신이셔서 군에 대한 마음이 있었거든요. 학군단은 방학 중에 한 달 훈련을 세 번 진행해요. 특히 첫 번째 훈련인 기초군사훈련 때는 코로나19로 생활관 단위로 훈련했는데요. 생활관 친구들과 24시간 동고동락하며 고된 훈련을 함께하니 가족만큼 가까워지고 전우애가 샘솟았죠.” (차윤지)
(왼쪽부터) 시현 학생의 비대면 견학, 재은 학생의 대면 견학, 윤지 학생의 학군단 군사훈련
(왼쪽부터) 시현 학생의 비대면 견학, 재은 학생의 대면 견학, 윤지 학생의 학군단 군사훈련
조금씩 일상이 돌아오면서 학교생활도 점점 지금의 모습을 찾게 되었는데요. 2022년엔 3학년이었지만 새내기들과 함께 헤매며 강의실을 찾으러 다니고, 셔틀버스와 학생 식당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낯설기도 했다고요. 늦게 시작한 캠퍼스 생활을 더 누리고 싶을 법도 한데, 4년 만에 졸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4년 동안 워낙 다양한 활동을 해서 주변에서 아무도 제가 바로 졸업할 줄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졸업 시기에 관해 고민했었는데, 1학년 때 집에서 버킷리스트처럼 대학 다니면서 하고 싶은 것 목록을 20개 정도 써놓은 적이 있거든요. ‘학생회관에서 밥 먹기’ 같이 소소한 것들이었는데, 얼마 전 그 목록을 찾아서 보니 제가 20개를 다 이루었더라고요. 그래서 미련 없이 학교를 떠나도 되겠다 맘먹었어요.” (정재은)

“저 같은 경우는 3수를 했어요. 그래서 이미 늦었다는 생각도 있었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게을러진다는 것을 깨달아서 휴학할 생각을 안 했던 것 같아요. 학군단 활동이 원칙적으로 휴학이 안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졸업하게 됐어요.” (차윤지)

“캠퍼스 생활은 많이 누리지 못했지만, 1, 2학년 때 집에서 수업을 들어서 체력적으로 크게 힘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학교 다니면서 밥 먹고 수업 듣는 것 자체가 너무 재미있기도 하고, 병역의 의무도 이행해야 하니까 굳이 다른 방식으로 쉴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바로 졸업하게 됐습니다.” (노시현)
졸업을 결심하게 한 재은의 대학생활 목표 리스트
졸업을 결심하게 한 재은 학생의 대학생활 목표 리스트
온전한 캠퍼스 생활은 1년 반밖에 누리지 못했지만, 지난 4년간의 대학 생활을 돌아보았을 때 남아있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고 친구들은 입을 모아 말했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언제일까요?

“4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을 꼽으라면, 무조건 졸업사진 찍었던 날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졸업을 앞두고 ‘내가 4년 동안 뭘 했나’하고 고민이 많던 시기였는데, 졸업사진을 찍는 날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졸업을 축하해주고 함께 사진을 찍었거든요. ‘아 이 사람들이 남았구나.’ 하고 깨달은 날이었어요.” (노시현)

“저는 언어학회를 직접 만들고 2년 정도 학회장을 했는데요. 지도교수님을 찾아뵙고 부탁드리는 일부터 지각비 같은 작은 내규를 정하는 일까지 직접 하면서 멤버들과도 가까워졌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열정적으로 했던 시기라 앞으로도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아요.” (정재은)

“작곡과는 소수과라 동기가 7명인데, 일상 회복이 되었을 때는 휴학한 친구도 있고 해서 7명이 다 같이 모인 적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4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동기 MT를 가게 됐는데, 이제야 처음 모였다는 것이 괜히 안타깝기도 했지만, 정말 재미있는 시간이었어요.” (차윤지)
(좌측부터) 시현 학생의 졸업사진 찍던 날, 재은 학생의 언어학회, 윤지 학생의 작곡과 동기 MT
(좌측부터) 시현 학생의 졸업사진 찍던 날, 재은 학생의 언어학회, 윤지 학생의 작곡과 동기 MT
3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온전한 캠퍼스 생활을 누릴 수 있었지만, 누구보다 자신을 많이 돌아보고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 친구들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마지막으로, 졸업을 앞둔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어요.

“학교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스스로 한계를 느낄 때도 있었고요.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모든 학사를 끝냈다는 것만으로 뿌듯하고 대견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졸업과 동시에 보병 장교로 입대하게 됐는데요. 사격, 행군하는 일상이 걱정은 되지만 보람도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어요.” (차윤지)

“저 역시 멋진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부럽고, 속상한 순간도 있었지만, 졸업할 때가 되니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낸 것 같아 스스로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난 4년간 학교생활에 집중했었기 때문에, 저는 올해를 휴식기 삼아 앞으로를 그려보려고 해요.” (정재은)

“4년 동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아요. 나중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안주하지 않고 항상 새로움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고요. 저는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게 되어서 법학 공부를 하면서 진로를 조금 더 고민해 볼 생각입니다.” (노시현)
여러분의 내일을 스누새가 응원합니다!
여러분의 내일을 스누새가 응원합니다!
답장 (3)
  • 병아리
    병아리
    인연의 끈은 양쪽에서 잡아야 이루어집니다 :) 코로나 시기에도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며 어쩌면 외로울 수도 있었을 20학번 졸업생들에게 잘 버텨주었다고, 졸업 정말 축하한다고 전해드리고 싶네요!졸업 축하드리고 앞으로 더 넓은 곳에서, 마스크 없이 꿈을 펼치시길 바랍니다!
  • 따오기
    따오기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4년간의 추억을 기반으로 더 넓은 곳에서 큰 꿈을 펼치시기를 응원합니다♡
  • 직박구리
    직박구리
    사람 삶이 짧은거 같으면서도 다사다난합니다. 애 낳지말라고 했다가 애 낳으라고 했다가... 100년만에 한번 겪는 역병의 시기도 거치고... 섦은 그런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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