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여섯 번째
8,300km를 날아온 이유
캠퍼스를 비행하던 중 어딘가에서 조잘거리는 말소리가 들렸어요. 산책하는 학생들 사이에 그 주인공이 있었는데요. 외모는 분명 외국인 학생인데 한국말을 너무 잘해서 시선을 사로잡았어요. 알고 보니, 호주 시드니대에서 온 교환학생 카리 스네하 사트야 사이(Sneha Satya Sai Karri, 이하 ‘세아’)였는데요. 1년간의 교환학생 생활을 누구보다 바쁘게 보냈지만, 아직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는 세아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봤어요.

“케이팝을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노래를 듣다가, 문득 가사를 로마자가 아닌 한글로 읽고 싶다는 생각에 그날 바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몇 시간 만에 한글 자음과 모음을 익히고 천천히 따라 읽어보니 재미있더라고요. 그러다 고등학생 때 외국어 선택과목으로 ‘초급 한국어’를 고르고 공부하면서 한국어에 점점 빠지게 되었죠.”
호주에서 온 교환학생 ‘세아’
호주에서 온 교환학생 ‘세아’
언어로서의 한국어가 가진 매력에 빠진 세아 학생은 모든 일상을 한국어로 보냈다고 해요. 한국어로 일기를 쓰고, 시사잡지도 읽고, 다큐멘터리도 보고, 노래도 듣고요. 그 결과 호주 대입 시험에서 ‘초급 한국어’ 과목 만점을 받았고, 한국학과 국제관계를 복수전공으로 시드니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어를 좋아해서 계속 배우고 싶었는데, ‘한국학’이라는 전공은 문화, 역사, 경제 위주라 언어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일상을 한국어로 채워갔던 것 같아요.”

한국에 한 번도 방문해 본 적 없던 세아 학생은 지난 2020년 주시드니 한국문화원에서 개최한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는데요. 그리고 2022년 7월 2일, 서울대학교 교환학생으로 첫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죠.
“처음 학교에 왔을 때, 가능한 많은 경험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처음 학교에 왔을 때, 가능한 많은 경험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학교를 선택할 때 큰 고민은 없었어요. 제일 좋은 학교에서 배우고 싶었거든요.(웃음) 처음 딱 학교에 왔는데, 규모도 크고 자연과 어우러져 있다는 게 정말 좋았어요. 이곳에서 1년간 가능한 많은 경험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죠.”

궁금한 건 다 해봐야 한다는 세아 학생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좋아해서 국궁 동아리, 총불교학생회에 가입해 여러 활동에 참여했다고 해요. 교환학생 친구들과는 향수를 달래기 위해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푸드페스티벌에도 방문하고, 새 학기를 잘 보내자는 다짐으로 관악산에도 올랐고요.

“저는 학교에서 오는 모든 메일을 읽는 독특한(?) 학생인데요. 그 덕에 학교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더 많이 알게 되고,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한국 불교 문화를 좋아해서 연등회, 템플스테이에 참여했는데요. 자아실현이나 현대인의 삶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느낌을 받았어요.”
석가탄신일 연등 축제를 위해 직접 제작한 연등
석가탄신일 연등 축제를 위해 직접 제작한 연등
한국에서 경험한 많은 활동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서울대학교 학생기자단’이었는데요. 직접 취재하고 작성한 기사가 학교 영문 홈페이지에 올라가는 것을 보며 자부심을 느꼈다고 해요. 언어와 새로운 경험에 관심이 많은 세아 학생에게 딱 맞는 활동이기도 했죠.

“제가 토론, 글쓰기를 좋아해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잘 말하고 잘 쓰는 것은 모국어도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영문 학생기자단에 지원했어요. 제가 첫 외국인 학생기자라고 하시더라고요. 기사는 영문으로 쓰고, 기획안 작성과 취재는 한글로 해야 해서 쉽지는 않았는데요. 자문 교수님, 다른 학생기자 친구들과 직접 만나 편집 회의를 하면서 문법을 점검하고 표현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모국어인 영어가 오히려 늘기도 했어요.”

세아 학생은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레 학교의 여러 활동을 접할 수 있어 좋았다고 합니다. 아이템을 직접 찾고, 취재를 위해 여러 활동에 참여해보면서 기자 활동 이상의 것들을 얻었다고요.

“경력개발센터에서 하는 기업탐방을 취재한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시드니대에 다닐 땐 캠퍼스에 직접 기업이 오는 취업박람회는 있었어도 직접 기업에 찾아가는 활동이 없었거든요. 처음에는 그냥 취재차 가보자고 생각했는데, 막상 현장에서 실질적인 정보를 보고 들으니 진로 계획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생각하지도 못했던 분야에도 관심이 생기고요.”
세아 학생이 직접 작성한 기업탐방 기사(좌)와 MBC 방문 당시 사진(우)
세아 학생이 직접 작성한 기업탐방 기사(좌)와 MBC 방문 당시 사진(우)
시드니와 서울은 8,300km나 떨어진 도시인데요. 한국에서 재미있고 알찬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타지에서 생활하며 어려운 점도 있었겠지요.

“제일 힘들었던 건 사람들과 관계 맺는 형태가 달라졌다는 점이에요. 호주에서는 길에서 만난 사람과도 편하게 대화하거든요. 그런데 여기서는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말을 걸면 이상하게 보잖아요. 모르는 사람들과의 스몰 토크가 생활에 활력을 주는 역할을 했더라고요. 문화 차이라 이해하지만, 용건이 있어야 말 걸 수 있는 분위기가 꽤 힘들더라고요.”

진지한 표정으로 어려웠던 시간을 이야기하던 세아 학생은 곧장 빙그레 웃어보였는데요. 어려운 시간이 있었지만 여러 도전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먼저 다가가는 성격 덕분에 많은 친구가 생겼기 때문이라고요.
외교부에서 주최한 ‘MIKTA 영 리더스 캠프’에 호주 대표로 참여한 세아 학생
외교부에서 주최한 ‘MIKTA 영 리더스 캠프’에 호주 대표로 참여한 세아 학생
세아 학생은 이제 1년의 교환학생 생활과 함께 대학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호주에 돌아가지는 않을 거라고 해요. 지금은 한국에서 단기 인턴을 하며 새로운 분야를 경험하고 있고, 다음 스텝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열려있다고요.

“저에게 교환학생 기간은 ‘인생의 필수코스’였던 것 같아요. 불편하고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있거든요. 명확한 방향성이 생겼다기보다는, 지금은 새로운 경험을 쌓아도 될 시기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지금도 인턴 생활을 하면서 김려령 작가님의 소설을 영어로 번역하고 있고, 창업을 해볼 생각도 있고요. 실패할 확률이 있어도 편하기보다는 불편하려고요. 제가 가진 궁금증이 해소될 때까지는요.”

이제 캠퍼스에서 세아 학생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과 조잘거리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니 아쉬운 마음이 앞서는데요. 눈앞에 놓인 길을 가기보다, 도전하고 경험하며 직접 길을 만들어 가고 싶다는 세아 학생의 미래를 스누새가 응원하겠습니다!
답장 (3)
  • 아비
    아비
    대학시절 코로나로 인해 외국으로 교환학생을 못가본게 많이 아쉬웠는데, 호주에서 8,300km를 날라오신 학생분의 글을 읽으며 대리만족(?)되는 느낌이 드네요~ 한국에 있는 기간동안 좋은 추억과 경험을 쌓아가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화이팅:)
  • 종다리
    종다리
    다른 언어권과 문화를 가진 나라에 적응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데, 꿈과 열정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모습이 멋집니다! 앞으로도 행복이 가득한 하루하루 보내시기를 응원합니다. :D
  • 까치
    까치
    세아같은 학생이 많아져서 서울대가 진정한 의미의 global university가 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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