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지방으로 찾아가는 나눔교실
나눔교실
ㅅㅇㄷ 학생들이 교육 소외지역을 직접 찾아가 고교생들과 함께 하는 '나눔교실'은 올해로 14년째를 맞이했습니다. 100명의 학생들이 5개 고교를 위해 만든 맞춤형 교재들.
무더운 8월의 관악산을 등지고 다섯 대의 버스가 지방으로 출발합니다. 군산, 김제, 순창, 옥천, 통영으로 가는 행렬에는 교육 봉사를 떠나는 '프로네시스 나눔실천단' 100명이 나눠 타고 있습니다. 교육 소외지역의 고교생들을 서울대생들이 직접 찾아가 공부법을 알려 주고 진로설계를 도와주는 나눔교실에 참여한 '나누미' 학생들입니다.

궁금한 스누새도 ㄷ자 날개를 힘차게 저어 버스 한 대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버스가 멈춘 곳은 충북 옥천고등학교입니다. 하늘에서 보니 학교 너머로 작은 초가집 한 채가 보입니다. ‘정지용 생가’라는 간판 뒤로 개천이 흘러 누군가 '향수'를 품기에 어울릴 것 같은 작은 마을입니다.
옥천고교문
옥천에 도착하니 교문에 현수막이 붙어 있습니다. 인구 5만의 옥천군에서는 내가 ‘서울대 학생’의 대표처럼 된다는 것을 깨달은 나누미들이 부담감을 호흡하며 학교로 들어섰습니다.
"제가 옥천 토박이입니다." 유창준 나누미가 커밍아웃을 합니다. "옥천고 재학 중일 때 이렇게 프로네시스 나눔실천단이 찾아왔었는데, 너무 좋아서 나도 서울대에 가면 꼭 나누미가 되어야지 다짐했었습니다.”

통계학도가 된 그는 다짐한 대로 나누미가 되어 작년에는 계룡시로 활동을 나갔습니다. 그 곳에서 고3 멘티로 만났던 방호찬 학생이 건축학과에 합격해 어엿한 동료 나누미로 함께 옥천에 왔습니다. 방호찬군 역시 “너무 좋아서, 돌려 주고 싶어서” 나누미가 되었다고 합니다.
유창준
옥천고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를 첨삭해 주는 유창준 학생. 지방에서는 자소서와 면접에 대한 정보를 나눠 줄 사람이 없다고 해요.
"받은 만큼 다 주고 싶은" 선의지로 무장한 20명이 고등학생 60명이 모인 강당에 도착합니다. 따지고 보면 나이 차이도 얼마 되지 않는 대학생들이 처음 보는 고교생들의 멘토가 되려면 서울대 ‘학벌’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누미들은 첫 날의 ‘아이스 브레이킹’ 시간에 기꺼이 몸을 던집니다.

나누미들이 랜덤으로 먹은 쿠키 중에 하나에는 초코크림 대신 와사비가 잔뜩 들어 있습니다. 포커 페이스들 사이에서 진짜 와사비를 먹은 선생님을 찾아내는 퀴즈를 풀어내면서 고등학생들의 깔깔 웃음소리가 강당을 넘어갑니다. 살신하여 얼음을 깨는 데 성공한 순간입니다.
귀여운 고교생들
인생을 바꿔 줄 멘토링을 시작하기 전에 나누미들은 "서울대생도 너희랑 다르지 않다"고 친근하게 다가가기에 정성을 들입니다.
이런 프로그램 하나 하나가 7월 한 달 내내 사전 모임을 하면서 탄생했습니다. 그럼에도 현장에 도착하니 조정할 것이 많아 또 회의는 계속됩니다. "그냥 우리가 더 고생하죠," 강당 행사의 동선 문제가 해결이 안 되자 누군가 결론을 내 버립니다. 나눔단 회의는 항상 이런 식입니다.

“조모임을 하면 항상 프리 라이더나 자기 방식을 강요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는 이상적인 조모임을 계속 하는 기분이에요.” 언어학과 한도경 학생은 나눔단의 분위기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강당 행사 준비
기숙사로 돌아와 하루 활동을 돌아보고 다음 날을 준비하는 나누미들. 학생들의 '귀여움'을 논하다 보면 회의가 계속 끊겨서 '귀엽다'는 금기어가 되었습니다.
공부법 나눔 시간이 되자 나누미들은 비장의 무기 ‘옥토퍼스’를 꺼내옵니다. 스무명이 각자 자신의 공부법을 A4 용지에 깨알같이 정리해 만든 비법서입니다. 과거를 기억하면서 “그 때 공부 시간 아끼려고 그런 짓까지 했었지” 새삼 추억에 젖습니다.

하루를 3등분하는 빈틈없는 시간 계획을 설명해 주는 멘토도 있고, 선생님을 분석해서 내신성적을 올리는 방법을 설명하기도 하고, 수능 문제지를 시간 내에 최대한 잘 풀어내는 비결을 알려주는 나누미도 있습니다.
구자형
"어제 새벽 3시까지 준비했는데 해 주고 싶은 말을 다 못한 거 같아요." 건설환경공학부 구자형 나누미는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그의 열강을 들은 고등학생들의 표정은 만족스럽기만 합니다.
"저도 제천에서 자라서 서울대는 내가 꿈도 못 꿀 대학 같았어요.", "불안한 마음은 누구도 어떻게 해 줄 수 없어요. 스스로를 믿는 것도 훈련이에요", "잠을 줄이지 말고 스마트폰이나 하는 붕뜬 시간을 줄이세요", “힘들더라도 희망과 독기를 품고 자신의 꿈을 위해서 노력해 보세요.” 나누미들의 메시지는 자신들에게 던지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5박 6일의 마지막은 슬프기만 합니다. 나누미들을 언제 볼 지 모르는 멘티들은 하염 없이 울면서 안겨듭니다. 나누미 지침서에는 "술을 마시지 말라"는 이야기와 함께, "학생들과 오래 같이 있다 보면 '서울 오면 선생님이 놀아 줄게' 하고 약속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지만 섣부른 약속은 하지 말도록" 당부하고 있습니다.
여고생들
처음 해 보는 1:1 면접 실습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정유은(충렬여고): 서울대 다니는 사람을 처음 봤어요. 엄청 가까이서 지내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서울대 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재훈(군산제일고): 첫 날은 뭘 5일이나 하나 싶었는데, 둘째 날 되니까 너무 재밌고, 셋쨋날 되니까 안 왔으면 큰 일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박지연(옥천고): 수학이 젤로 어려운데 학원에 가면 진도 빼기 바빠요. 나누미 선생님이 문제가 안 풀릴 때 답안지를 참고하는 요령까지 가르쳐 주셔서 완전 도움이 되었어요.
이현찬(순창제일고): 제일 크게 변한 건 꿈이 생겼다는 거에요. 내가 원하는 과에 꼭 갈 거에요. 내신, 수능, 자소서 모두 지치지 않고 준비해서요.
김수영(김제덕암고): 학과 박람회 시간이 제일 재미 있었어요. 제가 원하는 걸 하려면 농경제학과를 가야 한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어요.
여고생들
통영 충렬여고 학생들이 나누미 선생님들에게 열어 준 깜짝 공연
답장 (1)
  • 찌르레기
    찌르레기
    12년 전에 프로네시스 나누미로 활동했었는데 후배들 소식을 들으니 너무 따뜻합니다.
    바쁜 업무 가운데에서도 스누새 편지는 늘 기대감에 시간의 압박을 회피하면서도 눌러보게 되네요.
    역시, 열어보길 잘한 것 같아요.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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