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일곱 번째
오늘도 까치와 산다
캠퍼스를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사다리차 같은 것을 타고 나무 위에서 무언가를 관찰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어요. 진지한 표정으로 열심히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궁금했는데, 나무에 둥지를 튼 까치 친구들을 관찰하는 중이었어요. 스누새는 3년째 관악캠퍼스에서 까치 번식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이성현 학생(생명과학부 석박사통합과정)을 만나 보았어요.

“저희는 주로 장기 생태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대구경북과학기술원과 벌써 몇십 년 동안 진행하고 있는 연구인데, 특히 저는 기후변화에 따른 까치의 번식 성공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하고 데이터를 모으고 있어요. 관악캠퍼스에서 연구하고 있는 까치둥지는 60개 정도 됩니다.”

몇십 년 동안 한 가지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어요. ‘행동생태 및 진화연구실’에는 까치 뿐만 아니라 박새, 소금쟁이 등에 대해서도 장기 연구가 진행되고 있대요. 그리고 연구 분야는 훨씬 세분화돼 있었어요. 연구원 마다 까치의 번식 생태를 중심으로, 행동을 중심으로, 까치의 알이나 깃털의 특성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연구한다고 해요.
둥지 입구로 손을 넣어 번식 단계를 확인하는 모습
둥지 입구로 손을 넣어 번식 단계를 확인하는 모습
“까치는 보통 12월 말부터 둥지를 어디에 지을지 정하기 시작해요. 그러면 저희도 그때부터 둥지 짓기가 마무리되는 2~3월까지 일주일에 한두 번씩 지속적으로 관찰해요. 캠퍼스가 워낙 넓어 구역별로 나눠 쌍안경을 들고 계속 돌아다니면서 체크를 해요.”

지어진 까치 둥지 확인 후에도 이러한 연구실 밖의 작업이 10월까지 이어진다고 하니, 실내에서 분석하는 시간보다 현장을 다니는 시간이 더 많은 연구 분야도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어요. 그렇게 10개월 내내 직접 발로 뛰면서 관찰을 해도 1년을 주기로 까치들이 번식을 하니 데이터를 모을 수 있는 기회도 1년에 한 번 밖에 안 된다고 해요.

“자연환경이라는 것이 변수가 너무 많잖아요. 생각보다 제 마음대로 안 되는 것도 많고요. 환절기의 기온 변화로 갑자기 까치들이 한꺼번에 죽어버릴 때가 있어요. 그럼 내년에 더 조사해서 데이터를 쌓아야겠구나 싶지만, 올해와 내년의 조건이 또 다르니까 그렇게 하기도 힘들죠.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올해 지어진 까치둥지에 크레인을 이용해 접근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 하단에 부모 개체가 경계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지어진 까치둥지에 크레인을 이용해 접근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 하단에 부모 개체가 경계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를 위해 시기별로 둥지에서 알을 꺼내와 관찰하고 다시 가져다 놓고, 또 새끼가 부화하면 데리고 와서 인식표를 부착하고 여러 가지 수치들을 측정해 다시 올려보내고, 얼마간 더 자라고 나면 또다시 데려와 확인하고. 이런 식의 작업이 계속 이어진다고 해요. 그러다 보면 부모새들이 경계하는 일도 많은데, 잘못하면 까치한테 공격을 받는 일도 벌어진대요.

“알이나 새끼를 관찰하기 위해 사다리차를 타고 올라가면 포식자가 접근한다고 인식을 하고 부모새가 둥지로부터 날아가요. 그 사이에 확인을 위해 알이나 새끼를 잠깐 가지고 내려오는데, 이렇게 사다리차가 둥지로부터 멀어지면 부모새가 둥지 안에 들어가서 내부를 확인하고는 엄청 울어요. 보통 사다리차 위를 빙빙 돌면서 우는데, 심한 경우는 날아와 연구원들의 머리를 날개와 발로 치고 가기도 하고, 부리로 쪼아대기도 해요.
둥지 내에 있는 부화 후 10일차 새끼들의 모습(왼쪽), 부화 후 28일차 새끼에 인식표와 식별링 부착 작업을 마친 모습(오른쪽)
둥지 내에 있는 부화 후 10일차 새끼들의 모습(왼쪽), 부화 후 28일차 새끼에 인식표와 식별링 부착 작업을 마친 모습(오른쪽)
새끼 까치들이 둥지에서 떨어지는 일도 가끔 생기는데, 그럴 때면 발견하신 분들이 연구실로 연락을 주신다고 해요. 스누새를 만나는 날도 둥지에서 떨어진 까치들이 있어서 괜찮은지 살피고, 다시 둥지로 돌려보내 주느라 분주한 모습이었어요. 그렇게 오랜 시간 까치들을 만나다 보면 알게 모르게 정도 들 것 같았어요.

“재작년에 새끼 두 마리가 둥지에서 떨어져서 야생동물 보호 센터에서 연락이 온 적이 있었어요. 살펴보니 크게 다치지 않아 다시 부모새에게 돌려주려고 둥지에 갔더니 이미 부모새들은 새끼를 포기하고 떠나버렸더라고요. 그래서 연구실에서 기르기로 결정했죠. 어릴 때는 사람을 잘 따르고, 밥 달라고도 하고, 어깨나 머리에 올라오기도 하다가 어느 정도 자라니 사람에게 잘 안 오더라고요. 아직 야생의 본능이 남아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까치가 영리해 해마다 점점 높은 곳으로 이동해 둥지를 짓고 연구 개체수도 줄어 걱정이에요.”
“까치가 영리해 해마다 점점 높은 곳으로 이동해 둥지를 짓고 연구 개체수도 줄어 걱정이에요.”
연구실에서는 그 새끼 까치들이 어느 정도 자란 후 자연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방사를 해줬대요. 약 한 달 뒤, 무탈하게 지내고 있는 그 까치들의 소식을 우연히 알게 됐다고 하네요.

“어떤 분이 등산로 벤치에 앉아 간식을 드시고 계셨는데 까치 한 마리가 옆에 와서 자기도 달라고 하더래요. 그 이야기가 까치사진과 함께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왔는데 까치발에 저희가 달아준 식별링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 잘 살고 있구나’ 안심이 되었죠. 사람을 통해 자라, 사람에게 좀 더 친밀하게 다가간게 아닐까 싶었어요”

오랜 시간 같은 동물을 관찰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해 내는 생명과학이 참 재미있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연구라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만 있는 건 아니겠죠. 생각했던 결과가 잘 나오지 않거나 데이터가 모이지 않으면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까 해요. 그럼에도 ‘길게 보고 한다’며 덤덤하게 말하는 이성현 학생의 목소리에서 진득하게 오랜 시간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열정 같은 것이 느껴지는 듯했어요.
서울대학교 천문우주센터(45동)와 유전공학 연구소(105동) 사이에 올해 지어진 둥지(왼쪽), 인문대학(1동)과 교수학습개발센터(61동) 사이에 올해 지어진 둥지(오른쪽)
서울대학교 천문우주센터(45동)와 유전공학 연구소(105동) 사이에 올해 지어진 둥지(왼쪽), 인문대학(1동)과 교수학습개발센터(61동) 사이에 올해 지어진 둥지(오른쪽)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겠지만, 정말 열정이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고 그렇게 생각하면 또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동물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동물을 접하고 또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찰하는 일들이 재미있어요. 그래서 계속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까치 개체 수가 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올해 소원이라는 이성현 학생. 이번에는 의미 있는 자료들을 많이 수집해 좋은 성과가 있길, 스누새가 까치 친구와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답장 (8)
  • 오목눈이
    오목눈이
    학교에 나무가 많아서 좋습니다. 환경을 생각하면 좋은 일인것같습니다. 생명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느껴집니다.
  • 두루미
    두루미
    겨울에 잎사귀가 많이 떨어져 잘 보이던 둥지들이 이제는 잎이 무성해져서 잘 안보이던데 이렇게 스누새 편지로 둥지들의 안부를 알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 거위
    거위
    등산로 까치 이야기가 인상적이네요^^ "길게 보고 한다"는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와 닿습니다.
  • 오리
    오리
    까치 식별링이 항상 궁금했는데, 이 기사를 통해 알게 되어서 넘 좋구요. 까치 친구들이 건강했으면 하네요!
  • 제비
    제비
    저도 까치 식별링이 궁금했는데, 이 기사를 통해 알게되어 좋았습니다. 아기 까치를 데려가면 어미 까치가 많이 울고 공격하기도 한다는 말에서 뭉클했습니다. 까치들이 건강하게 잘 크고 잘 지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메추라기
    메추라기
    선생님의 까치 연구, 나아가 환경 연구를 향한 연구 열정에 응원의 메세지를 보냅니다 :)
  • 아비
    아비
    일반인들도 까치링을 다는 작업을 같이해보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까치는 따로 연구 안하시나요? 우리학교에 물까치도 많더라고요. 박새, 오목눈이, 수컷 딱새, 까치, 딱따구리, 소쩍새(소리만 들리는..), 까마귀 등 다양한 새들이 우리학교에 많아서 너무 행복합니다 ! 좋은 연구 응원해요 :D
  • 두견
    두견
    오가며 자주 보는 까치에 대해 새로운 내용들을 알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좋은 연구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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