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교수님, 동아리 뭐 하세요?" - 교수합창단 이야기
스누새에게 초대장이 왔어요. 서울대 교수합창단 공연 티켓이네요. 10년 전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들에게 2PM의 "죽어도 못 보내"를 불러 공중파 TV에 등장했던 그 합창단이에요. 교도소에서 공연한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이번엔 콘서트홀을 통째로 빌렸어요.

여의도 공연장에는 40여명의 교수님들이 드레스와 보우타이를 차려입고 리허설이 한창이에요. 노래 잘 하는 분들이 이렇게나 많다니요!
못 잊어
지난 6월 13일 영산아트홀에서 부르고 큰 박수를 받은 '못 잊어' (김소월 시, 조혜영 작곡)입니다.
"외국에서 해 보신 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순수한 아마추어입니다." 합창단에 와서 발성부터 새로 배웠다는 공학자 단장님의 대답이에요. 단장님은 이제 노래하는 법을 좀 알게 되어서 공연에서 독창 파트도 맡았다고 해요.
합창단에 와서 노래하는 법부터 배운다구요?
"지휘를 맡은 성악과 명예교수님이 전공 학생 가르치듯이 엄격하게 지도하세요. 다들 교수들이라 그런지 그렇게 정식으로 배우는 걸 좋아하구요." 교수법을 연구하시는 사범대 교수님의 설명이에요.

"라틴어, 독일어로 된 노래도 있어서 딕션을 깨알같이 악보에 적어서 연습해요. 출퇴근할 때는 녹음파일을 무한 반복 듣고, 모여서 화음을 맞추면서는 기교와 감정표현까지 메모하면서 연습해요. 악보가 너덜너덜해 질 때 쯤이면 무대가 보여요." 무대경력 10년차가 된 교수님이 공개한 연습법이에요.
지휘자
"소프라노 1/7음이 올라갔어요. 낮춰보세요." 보통의 교수들을 성악가처럼 엄격하게 지도하며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윤현주 명예교수님. 목에 좋은 간식을 챙겨오는 엄마 리더십도 있다는 반전.
새 곡을 시작하면 처음에는 민망한 수준이지만 각자의 무한반복이 모여 공연할 때 쯤엔 듣기 좋은 화음을 만든다고 해요. "프로는 아니라도 적어도 나의 최선의 목소리까지는 표현해 보겠다는 욕심이 있거든요."
교수님들이 '스펙' 쌓을 것도 아닌데 뭐하러 동아리를 이렇게 열심히 하죠?
"스펙이 아니라서 순수하게 좋은 거에요. 일하다 머리가 터질 것 같다가도, 이걸 부러뜨리고 나서 온 몸으로 노래하면서 다 풀어야지' 생각하면 자신을 더 강하게 몰아부칠 수 있어요." 젊은 감각이 돋보이는 대중문화 전문가 교수님의 빡세게 일하고 빡세게 놀기 법칙이에요.

"저한테 합창은 신성한 루틴이에요." 함께 하면 일도 즐거운 조경학과 교수님의 여가 철학이에요. "전공 특성상 프로젝트 데드라인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고 팀원들에게 결정을 수시로 내려줘야 하는 긴장상태로 사는데, 노래를 부를 때는 스트레스가 0으로 돌아가는 경험을 해요. 대통령도 여가시간은 준수해야 제대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독창 파트
합창단 지휘자님의 성악 훈련을 통해 늦은 나이에 노래하는 법을 새로 배웠다는 어느 교수님은 이제 고음의 독창 파트를 소화할만큼 노래 장인이 되었어요.
"뇌과학 관점에서도," 뇌의 노화를 연구하는 교수님이 증거를 제시하세요. "아무 것도 안 할 때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놀 때 뇌가 비로소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요."
이렇게 좋은데 왜 더 젊을 때 안하셨어요?
“사실 서울대 사람들은 공통된 비극이 있어요. 어려서 공부 잘하면 주변에서 다들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 가라고 하잖아요. 그런 기대 속에서 다른 재능은 묻혀 버리는 거죠. 사람이 한 가지 재능만 타고 나는 건 아닌데.” 유럽에 오래 일했던 사회대 교수님의 분석이에요.

"그래도 젊을 때는 한 가지 열정만으로 살 수 있는데, 교수가 되어서 계속 그렇게 살면 한계에 부딪히잖아요. 책임은 느는데, 체력은 달리고, 뇌기능은 둔화되고. ” 81학번 교수님의 이야기에 교수님들이 모두 동의하는 듯 해요. “합창을 하면 에너지가 다시 순환되는 느낌이에요!”
남교수 공연
립싱크는 없다! 나이도 없다! "명예교수는 어디 가면 너무 대접받거나 투명인간이 되는데, 여기서는 누구나 평등하게 목소리 1이 되어요." (음악에 감사하는 명예교수)
"과학적으로 봐도 늙어가는 뇌를 춤추게 하는 건 논문 10편씩 쓰는 지적 활동이 아니라, social한 활동이에요. 함께 한 목소리를 만들어 가는 합창 같은 거요." 심리학과 교수님이 결론을 지어요.
각자 다른 합창의 즐거움이 있다면요?
"저는 합창이 주는 몰입의 즐거움을 잊을 수가 없어요. 틀리지 않아야지 하고 집중하면서 목소리를 내면 그 순간에 내가 엄청 몰입하는 거에요. 그 행복감이 새로운 아이디어로 연결되기도 해요." 사람 많은 실험실을 운영하는 교수님의 합창하는 이유에요.

"연습하다가도 내가 이 소리를 만들고 있다는 것에 감동해요. 남이 증명한 과정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 직접 풀어내는 수학자의 마음 같다고나 할까요." 수학 전공 교수님이 이야기하는 직접 노래하는 기쁨이에요.
공연이 끝나고
노래가 하나 끝날 때마다 점점 서로에게 따뜻하게 웃어요.
“맞아요. 저는 세계적인 무대에서 하는 음악 공연도 많이 봤는데, 잘 하는 사람 노래를 들으면 귀가 호강하지만, 기교가 없어도 아마추어들이 진심을 담아서 부를 때 그 화음이 정말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걸 합창단 하면서 느껴요.” 역사학자 교수님의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들의 노래가 더 좋은 이유에요.

“전공도 다르고 나이도 다른 교수들이 모여 서로 소 닭 보듯 쳐다보다가, 지휘자 손길에 맞춰 화음을 만들어 내고, 그 소리가 꽤 괜찮아서 선 채로 함께 감동한다는 거, 노래를 같이 부른 사람들간에 말 없는 유대감이 공유된다는 것…. 우리가 합창하는 그 순간이 소박하지만 예술이 삶을 움직이는 현장이라고 생각해요.” 인문학자 교수님의 정리로 합창 수다를 마무리 하고 나니 모두 스트레스가 풀린 것 같네요!
답장 (1)
  • 병아리
    병아리
    모든 합창단원 교수님들이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모두 하셨군요.
    하여간 실험실에서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찌들은 때를 매주 금요일 노래연습으로 모두 날려버릴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렇게 좋은 자료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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