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애독자 사연 1탄-야생동물센터
아기 너구리 19-362
서울대 동물병원 야생동물센터에서 크고 있는 너구리19-362입니다.
쉿! 늘 주변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있어요. 기생충 이야기가 아니에요. 인간의 도시 서울에서 산과 수풀에 서식하는 야생동물들이에요. ㅅㅇㄷ 옆 관악산에도 새, 너구리, 족제비 친구들이 엄청나게 많이 살고 있어요.

시골에 사는 순진한 야생동물들은 요즘도 건너 산에 당당하게 밥 먹으러 가다가 달리는 차에 부딪혀 극적으로 존재를 들키기도 하죠. 서울 동물들은 사람이 사는 도시에 얹혀 사는 모양새가 되다 보니, 결국 사람 때문에 다치고 사람에 의해 구조받고 치료받는 일이 생깁니다.
에어콘 실외기 옆에서 태어난 아기 박새 "우리 엄마가 하필 남의 집 에어콘 실외기 앞에 집을 지었지 뭐야. 둥지가 철거되면서 엄마는 결국 날아가시구 우리 형제들만 이 곳으로 왔어. 아마 다른 엄마들처럼 사흘 쯤 미친듯이 우리들을 찾다가 결국 새아빠를 찾아 보상번식하시겠지. 막내는 오다가 죽고 다섯이 함께 크고 있어. 이렇게 열심히 먹어서 날개가 튼튼해 지는 가을이 되면 내 고향 자연으로 돌아갈테야."
- 에어콘 실외기 옆에서 태어난 아기 박새
ㅅㅇㄷ 수의과대학 동물병원 지하에 이런 다치고 엄마 잃은 야생동물들을 위한 야생동물센터가 있어요. 다친 친구들을 치료해 주기도 하고, 보호자가 없는 아기 야생동물들을 클 때까지 돌봐주기도 해요.

지금은 너구리 친구들이 72마리나 들어와 있네요. 너구리 엄마들은 아이들을 여기저기 나눠서 두고 돌아다니며 돌보는 경우가 많아요. 한 300미터에서 500미터 쯤 꽤 멀리 떨어트려 두지만 엄마는 꼭 기억해서 모두 찾아다니며 수유를 해 줘요. 하지만 사람이 사는 곳이다 보니 아기 너구리들이 가끔 인간에게 발견되어 이 곳으로 와요.
다쳐서 가오를 잃은 너구리 405번 오늘 온 너구리 405번은 걷지를 못 해 엑스레이를 찍어 보니 발뼈를 다쳤어요. 뼈가 심하게 상해서 수술해야 하는데 빈 수술방이 없어서 속상하네요.
- 다쳐서 가오를 잃은 너구리 405번
사실 우리 wild life, 야생 것들에게는 가오가 있어요. 사람이 주는 물질과 안락함이 없이는 못 사는 ‘반려동물’들과는 달리, 웬만큰 아파서는 사람한테 기대지 않아요. 정말 많이 아프거나 자생력이 전혀 없는 아기일 때에나 순순히 잡혀 와 자존심 내려 놓고 돌봄을 받는 거에요.
비행 연습하다 떨어져서 구조된 어린이 까마귀 요 까마귀 녀석들이 문제아에요. 머리가 좋아서 사람을 기억해 버려요. 다른 새들은 사람이 먹이를 주면 입도 안 벌리고 앙탈을 해서 치료사님들이 손으로 안고 눈을 가려서 겨우 먹이는데, 이 녀석들은 사람만 보이면 입을 쫙쫙 벌리고 까까 까까 밥 달라고 해요. 야생에 가면 어찌 살려구, 쯧쯧.
- 비행 연습하다 떨어져서 구조된 어린이 까마귀
지난달에 들어 온 아기 너구리 19-362번(상단 표지모델이에요)은 지나친 귀여움으로 치료사님들의 애간장을 터치하고 있어요. 김태훈 치료사님이 362번에게 밥을 주러 오셔서는 손바닥을 짝짝 치면서 놀라게 만들다가 가네요.

“정 들지 말라고 그러는 거에요. 너무 귀여워서 쓰담쓰담 해 주고만 싶지만, 이 친구도 언젠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잖아요. 인간에게 적응해 버리면 와일드 라이프계에선 도태되는 거거든요.”

야잘알, 인정합니다. 정을 안 주려고 이름도 안 지어주고 죄수처럼 번호로 부르는 거였군요.
어미새처럼 핀셋으로 벌레 먹여주는 김태훈 야생동물 재활치료사님 "야생동물센터에 들어오는 동물의 절반 쯤은 엄마 잃은 아기새들이에요. 우리 새들은 대사량이 엄청 많아서 체중의 30% 정도를 매일 먹어줘야 한답니다. 치료사님들은 틈만 나면 핀셋으로 모이를 주세요"
- 어미새처럼 핀셋으로 벌레 먹여주는 김태훈 야생동물 재활치료사님
아기새들은 주로 5-6월쯤 와서 여름 내 센터에서 크다가 가을에 방생을 해요. 치료사님들이 매일 매일 수시로 안고 모이를 주고 키웠어도 방생하러 가면 뒤도 안 돌아보고 날아가 버려요.

"야생동물 재활치료사의 운명이에요. 애착이 안 생길 수 없지만 저 아이가 나를 다시 볼 일이 없어야 잘 사는 거잖아요."
매일 들어오는 친구들을 기록한 보드 매일 들어오는 친구들을 기록한 보드. 파란색은 살아서 방생한 동물, 검정색은 치료중인 동물, 빨간색은 그 날 죽은 동물
스누새는 ㅅㅇㄷ에서 보살핌을 받다 보니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캠퍼스를 맴돌고 있지만, 사실 와일드 라이프를 정말 위한다면 그러면 안되는 거라고 치료사님들이 이야기 해요.

"잘 모르시고 아기 야생동물을 데려가서 키우는 분들이 계세요. 그러다 덩치가 커지면 감당을 못해 다시 산에 풀어 놓으세요. 그건 데려 올 때 납치고, 풀어줄 때 유기에요."

납치 유괴범이 되기 보다는 통유리 건물에 부딪혀 다치고 죽는 새가 없도록 조금 더 신경쓰는 것은 어떨까요.
관악산에 살았던 숯꿩 "내 깃털이 화려하지? 하지만 난 이미 이 세상 새가 아니야. 오늘 아침에 서울대 건물 유리창에 부딪혔다가 뇌출혈을 일으켰거든."
- 관악산에 살았던 숯꿩
스누새에게 소식을 보내세요
동물병원 야생동물센터의 김태훈 치료사 얼마 전 동물병원 야생동물센터의 김태훈 치료사님이 스누새에게 사연을 보내시면서 스누새가 찾아뵙고 편지를 쓰게 되었어요. 스누새 편지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분은 snubird로 메일을 보내주세요.
스누새 드림. snubird@snu.ac.kr
http://www.facebook.com/snubird
답장 (3)
  • 나무발발이
    나무발발이
    따뜻한 글입니다.

    지속적으로 만들어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 비둘기
    비둘기
    아..ㅠ 감동적인 편지 감사합니다..

    정을 주면, 사람 손이 닿으면 야생적응이 힘들어질까봐 거리를 두며 사랑하는 마음과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네요.. 이게 성숙한 사랑이지 싶구요..

    살처분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는다는 말을 듣기는 했었는데 정말 그렇군요..ㅠ 웃음을 찾아가는 수의사 선생님과 당시 함께 그공간에 계셨던 분들, 그리고 동물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삭막한 학교 어느 한 자락에서 이런 따뜻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구나 하니 제 마음에도 미소가 번지네요^^

    좋은 나눔 감사합니다~!

  • 지빠귀
    지빠귀
    스누새야 스누새야

    너구리가 넘모넘모 귀엽다...

    혹시 너구리를 보러 찾아간다면 만날수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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