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세 번째
투혼을 만드는 사람
한 학기를 공들인 수업이라면 최고의 긴장 상태에서 시험을 치르듯,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이 4년을 준비한 올림픽 무대에 서면 얼마나 긴장될까요? 선수들이 세계무대에서 최고의 기량을 보여줄 수 있게 정신적 멘토가 되어주는 멘탈코치들이 있어요. 사범대 대학원에서 스포츠심리학과 상담학을 공부하는 서지예 학생도 그런 코치 중 한 명이에요.

“대한체육회에 심리지원팀이 꾸려져서 저는 태권도 국가대표 장준 선수를 코칭했어요. 3월부터 비대면으로 매주 만나면서 ‘멘탈스킬’을 교육했어요.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경기 장면을 그려보게도 하고 인지재구성을 통해 부정적 심리상태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훈련을 해요. 그러면서 선수가 여러 심리기술을 자신의 자원으로 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우리에게는 생소한 일이지만 국가대표급의 운동선수들 곁에는 이렇게 심리적 지원을 하는 멘탈코치가 필수적이라고 하는데요. 지예 학생은 학부 때까지 태권도 선수로 활동한 경험에 스포츠심리학과 상담학의 이론을 더해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최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있어요.

“스포츠심리학은 운동선수의 심리기술 훈련을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상담 이론을 다루지 않아서 실제 적용할 때 아쉬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스포츠심리학 학위를 받고 자연스레 상담학도 전공하게 됐어요. 두 학문을 융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태권도 국가대표 장준 선수(본인 제공)
올림픽의 그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시간을 쪼개 준비하던 선수들. 안타깝게도 이번 도쿄올림픽은 코로나로 1년이 연기되면서 선수들도 많이 힘들었다고 해요. 곧 극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던 때도 있었지만, 코로나 확산세가 진정되지 않으면서 땀 흘려 준비한 날들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선수들의 마음을 흔들었어요.

“올림픽이 미뤄지면서 술을 먹고 일탈하는 선수도 있었고, 출전 경험이 부족해 자기 기량을 끌어내지 못하는 선수들이 많았어요. 무엇보다 올림픽이 열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컸어요. ‘올림픽이 열릴지 말지의 두려움은 나중 문제로 두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자’고 코칭할 수밖에 없었어요.”

심장을 뜨겁게 하는 관중의 함성은 없었지만, 다행히 올림픽은 개최됐고 오랜 시간 준비해온 선수들의 투혼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줬어요.
지예 학생이 코칭한 장준 선수는 세계랭킹 1위의 뛰어난 선수지만 21살의 어린 선수이기도 해요. 큰 경기를 앞두고 긴장하는 것은 다른 선수들과 다르지 않았어요. 지예 학생은 장준 선수의 경기 당일까지도 ‘지금까지 정말 잘 달려왔다’며 용기를 북돋아 줬다고 해요. 장준 선수는 특기인 빠른 발로 상대를 노렸지만, 준결승에서 튀니지 선수에게 아쉽게 져 동메달로 올림픽을 마쳤어요.

“우연히라도 다른 사람들이 제 친구나 후배들을 욕하는 걸 듣게 되면 힘들어서 사실 제가 올림픽 기간엔 식당에 잘 안 가요. 그런데 이번 올림픽은 정말 달랐던 게, 세계랭킹 1위이고 거의 진 적이 없는 친구가 3등을 했지만 주변에서 ‘대단하다’ ‘잘 싸웠다’ 말씀을 해주시고 팬도 많이 생겼더라고요. 우리도 선진국처럼 성적 자체보다는 선수들의 노력을 높게 사주는구나 싶었어요.”
지예 학생은 어릴 적부터 태권도를 좋아했고, 올림픽 금메달이 꿈이었던 태권도 유망주이기도 했어요. 9살이던 2000년에 시드니올림픽 시상대에 오른 선수를 보면서 커서 꼭 저 자리에 서고 싶었대요.

“엄마 아빠한테 먼저 태권도 학원을 보내 달라고 졸랐어요. 초등학교 때 이미 선수 생활을 했고, 고2 때는 전국대회서 금메달을 땄어요. 지는 걸 워낙 싫어하는 성격이라 그 메달이 너무 값지고 좋더라고요.”

그렇게 서울시 대표 선수로 최고의 기량을 펼친 지예 학생은 한 대학 체육부에 진학해 숙소 생활을 하며 운동에 회의감을 가지게 됐어요. 학습권과 자율성이 없는 생활을 하면서 문득 이건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때는 성적 지상주의의 엘리트 체육문화가 만연할 때라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기도 했어요. 운동을 그만두고 무얼 할지 고민하다가 기초과목으로 들은 스포츠심리학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선수 생활에서 느낀 심리적 불안 같은 것을 이론으로 공부를 하니까 더 와닿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선수 생활을 접고 스포츠심리학과 상담학을 아우르며 이 분야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지예 학생. 대학생활문화원에서 상담사로도 활동하면서 마음을 다친 후배들을 돕고 있는 지예 학생에게 후배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을 물었어요.

“서울대 친구들의 마음의 문제는 주로 완벽주의 때문이에요. 남과 비교하고, 시작을 미루고, 기한이 다 되어서 시작하고, 결과가 안 좋으면 자책감이 들어 악순환에 빠지죠. 저는 ‘못해도 그렇게 크게 잘못되지 않는다’고 얘기해줘요. 본연의 모습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고 있어요. 공부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못한다고 해서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도쿄올림픽 선수들의 말말말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
배구 김연경

“누가 쏴준 화살도 아니고 제가 쏜 화살이기 때문에.
아쉽지만 그게 또 삶 아니겠어요? 어떻게 해피엔딩만 있겠어요.”

양궁 김우진

“메달은 오늘 비록 못 땄지만, 후회 없는 경기를 했고요. 저는 행복합니다.”
높이뛰기 우상혁
답장 (10)
  • 두루미
    두루미
    스포츠심리학과 상담학을 융합하여 보다 실제적이고 실효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어쩌면 본인이 필요로 했던 '버팀목'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서지예'님의 이야기 감명 깊게 잘 읽었습니다!또한 글의 말미에서 언급해 주신 부분도 제 마음에 너무 잘 와닿았고, 다정한 말씀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 메추라기
    메추라기
    너도 나도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남에게 비교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할 줄만 알지 스스로 다독여주지 못하는 것 같아요. 나한테도 주변사람들한테도 '잘했다' '대단하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ㅎ
  • 고니
    고니
    뉴스에서 듣기만 하던 심리지원팀이 석박사 과정을 거친 인재가 모여 만들어지는군요. 스포츠심리학과 상담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자신이 몸 담았던 체육계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또한 제 분야에서 학문의 융합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글의 마지막에 해주신 말씀이 크게 와닿습니다. 저 또한 완벽주의로 고생하고 최근 그 생각에 몸부림쳤는데, 스누새 글을 읽고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습니다. 오늘은 다른 이들에게 '소중하다', '이미 잘하고 있다'라는 말을 건네봐야 겠네요!글 잘 읽었습니다.
  • 독수리
    독수리
    오늘도 따듯한 스누새의 편지를 보면서 내일 모레 있을 졸업식을 앞둔 소중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앞으로 사회에 나가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희망합니다. 사회에서의 하루하루가 올림픽을 준비하고 임하며 겪은 투혼과 같이 힘들기도 하고 달기도 하겠지만 그럴 때마다 서울대에서의 추억과 노력을 잊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길 또한 희망합니다. 올림픽 참여한 모든 국가대표 선수들과 코치들 그 뒤에서 서포팅한 모든 이들, 더 나아가 우리 모두에게 응원의 메세지를 전합니다!
  • 까치
    까치
    투혼을 만드는 사람... 참으로 업의 특성을 콕짚은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누구보다도 선수 자신과의 싸움을 지원하는 든든한 우군이네요. 저도 이런 우군이 필요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저도 투혼을 만드는 사람이 되주고 싶습니다.
  • 발구지
    발구지
    못한다고 해서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 해오라기
    해오라기
    멘탈 관리가 중요하다는 걸 나이가 들어가며 새삼 느낍니다-최선을 다하되 가볍게!
  • 메추라기
    메추라기
    항상 스누새가 보내주는 뉴스레터로 행복해요. 멋진 직업이네요!
  • 아비
    아비
    스누새가 물어온 서지예님의 이야기는 요즘 힘들었던 제 마음을 위로해주는 메세지 같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것 같아요. 모두 행복하세요.
  • 말똥가리
    말똥가리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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