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교수의 연구실에는 현장을 오가며 걸었던 수십 개의 이름표가 훈장처럼 걸려있어요. 그동안 굵직한 재해 현장에서 과학으로 원인을 찾고 사회를 바꿔온 교수,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님을 스누새가 만났어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간단했어요. 교과서에 나온 대로 독성물질이 실제 작업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나오는지 평가한 거죠.”
이달 말 퇴임을 준비하고 계신 교수님이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은 백혈병 환자들이 발생한 한 대기업의 반도체 공정을 조사한 일이에요. 그때 교수님은 그 기업이 발주한 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도 공정한 조사를 통해 피해자들이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결정적 역할을 하셨어요.
“‘닫힌 공정’이라고 하죠, 일상적인 공정에선 독성물질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조사해보니 중간중간 정비를 하는 ‘열린 공정’에서 독성물질이 나왔어요. 다른 기관들의 조사와는 다른 결과였죠. 이런 위험한 공정을 하청을 주고 있길래 그것을 바꾸라고 하니 그 기업이 하면 다른 기업들도 해야 한다고 재계가 반발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간단했어요. 교과서에 나온 대로 독성물질이 실제 작업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나오는지 평가한 거죠.”
이달 말 퇴임을 준비하고 계신 교수님이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은 백혈병 환자들이 발생한 한 대기업의 반도체 공정을 조사한 일이에요. 그때 교수님은 그 기업이 발주한 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도 공정한 조사를 통해 피해자들이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결정적 역할을 하셨어요.
“‘닫힌 공정’이라고 하죠, 일상적인 공정에선 독성물질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조사해보니 중간중간 정비를 하는 ‘열린 공정’에서 독성물질이 나왔어요. 다른 기관들의 조사와는 다른 결과였죠. 이런 위험한 공정을 하청을 주고 있길래 그것을 바꾸라고 하니 그 기업이 하면 다른 기업들도 해야 한다고 재계가 반발하더라고요.”
이렇게 ‘사회를 고치는 의사’로 평가받는 교수님도 학창시절은 평범했다고 해요.
“모범생이었어요. 고등학교까지 공부 외에 다른 경험을 할 기회가 제한적이어서 대학에 들어와서 할 수 있는 모든 동아리 활동을 해보자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의대 연극반, 오케스트라부, 문예반, 독서 모임 다 해보느라 집에 들어가지 않는 날이 더 많았어요.”
남들처럼 의사의 길을 갈 수도 있던 교수님의 인생 방향을 바꾼 것은 한 공장에서의 강렬한 경험을 하고부터였어요. 당시 터부시되던 ‘직업병’을 현장에서 배우려고, 3학년 겨울방학 때 동생의 주민등록번호를 빌려 구로공단에 위장 취업을 했어요.
“낚시 부품 공장이었는데 옆 사람과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시끄러웠어요. 사람들이 귀마개도 없이 그 소음을 견디고 있었어요. 어느 순간 소음이 싹 없어지면 점심시간이었어요. 평범하게 의사로 살 수도 있었지만 이쪽으로 공부해야겠다 마음먹게 된 경험이었어요. 지금도 그때 소음 때문인지 한쪽 귀가 잘 안들려요.”
“모범생이었어요. 고등학교까지 공부 외에 다른 경험을 할 기회가 제한적이어서 대학에 들어와서 할 수 있는 모든 동아리 활동을 해보자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의대 연극반, 오케스트라부, 문예반, 독서 모임 다 해보느라 집에 들어가지 않는 날이 더 많았어요.”
남들처럼 의사의 길을 갈 수도 있던 교수님의 인생 방향을 바꾼 것은 한 공장에서의 강렬한 경험을 하고부터였어요. 당시 터부시되던 ‘직업병’을 현장에서 배우려고, 3학년 겨울방학 때 동생의 주민등록번호를 빌려 구로공단에 위장 취업을 했어요.
“낚시 부품 공장이었는데 옆 사람과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시끄러웠어요. 사람들이 귀마개도 없이 그 소음을 견디고 있었어요. 어느 순간 소음이 싹 없어지면 점심시간이었어요. 평범하게 의사로 살 수도 있었지만 이쪽으로 공부해야겠다 마음먹게 된 경험이었어요. 지금도 그때 소음 때문인지 한쪽 귀가 잘 안들려요.”
2015년, 영국 런던의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 본사에서 손팻말 시위를 하는 백도명 교수님(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교수님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1992년은 인견사 생산 공장에서 근무한 한 근로자가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 ‘원진레이온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끌시끌했었어요. 교수님은 이 사건을 시작으로 석면 유해성 연구, 반도체 공장 백혈병 조사, 가습기 살균제 역학조사, 라돈 침대 유해성 조사 등을 이어가며 우리 사회의 산업 보건에 대한 인식을 바꿔왔어요.
“안전 문제의 조사결과는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라는 육하원칙에 의해 기술하거든요. 사실 간단하고 분명한 것임에도 ‘왜’와 ‘누가’를 기술하는 사람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재해로 인정받기 어려웠었어요. 과거에는 직업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터부시됐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지적한다고 ‘불손한 사람’으로 몰리지는 않으니까 과거와 달리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안전 문제의 조사결과는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라는 육하원칙에 의해 기술하거든요. 사실 간단하고 분명한 것임에도 ‘왜’와 ‘누가’를 기술하는 사람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재해로 인정받기 어려웠었어요. 과거에는 직업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터부시됐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지적한다고 ‘불손한 사람’으로 몰리지는 않으니까 과거와 달리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교수님은 서울대에서 근무하면서 인력과 돈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이 연구할 수 있던 환경이 가장 좋았던 일이라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융합연구가 부족한 점과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현재의 교원 업적평가 제도에는 목소리를 내셨어요.
“학문은 통섭과 협업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을 뒷받침하는 제도들이 생기면 좋겠어요. 또 교수의 업적평가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좀 더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고민이 담겨있는 것인데, 지금은 평가 자체가 마치 최종결과인 것처럼 되었어요. 교수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시기에 떠오르는 문제들을 어떻게 고민할지, 정성적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퇴임을 앞두고 이제는 조금 여유를 가져도 될 듯하지만, 교수님은 여전히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꿈을 꾸고 계세요.
“원진레이온 사건 피해자들이 세운 녹색병원이라는 곳이 있어요. 퇴임 후 그곳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을 이어서 할 것 같아요. 원인을 딱 꼽기 힘든, 특히 직업환경에서 그 원인이 있다면 찾고, 개입하고, 바꿔주는 일을 계속할 것 같네요.”
“학문은 통섭과 협업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을 뒷받침하는 제도들이 생기면 좋겠어요. 또 교수의 업적평가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좀 더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고민이 담겨있는 것인데, 지금은 평가 자체가 마치 최종결과인 것처럼 되었어요. 교수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시기에 떠오르는 문제들을 어떻게 고민할지, 정성적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퇴임을 앞두고 이제는 조금 여유를 가져도 될 듯하지만, 교수님은 여전히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꿈을 꾸고 계세요.
“원진레이온 사건 피해자들이 세운 녹색병원이라는 곳이 있어요. 퇴임 후 그곳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을 이어서 할 것 같아요. 원인을 딱 꼽기 힘든, 특히 직업환경에서 그 원인이 있다면 찾고, 개입하고, 바꿔주는 일을 계속할 것 같네요.”
많은 일을 하시고도 ‘아직 못다 한 일이 많다’는 교수님. 마지막으로 ‘의사’, ‘보건학자’, ‘교육자’, ‘활동가’ 등 많은 수식어 중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지 물어봤어요.
“제가 특별한 평가를 받는 건 싫고요, 유학 갔을 때 ‘도명 백’이라는 이름을 외국인들이 잘 못 알아듣길래 ‘찰리’라는 닉네임을 만들었어요. 친구들이 키가 작은 저를 ‘짜리’라고 했었거든요. 그게 찰리가 된 거예요. 저는 ‘찰리 백’으로 기억되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같이 문제를 풀어가는 사람, 가까이 있는 친구 같은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특별한 평가를 받는 건 싫고요, 유학 갔을 때 ‘도명 백’이라는 이름을 외국인들이 잘 못 알아듣길래 ‘찰리’라는 닉네임을 만들었어요. 친구들이 키가 작은 저를 ‘짜리’라고 했었거든요. 그게 찰리가 된 거예요. 저는 ‘찰리 백’으로 기억되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같이 문제를 풀어가는 사람, 가까이 있는 친구 같은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