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번째
“제 고향은 북한입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목숨을 건다는 건 어떤 경험일까요? 감히 상상도 어려운 이런 일을 겪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 곳곳에, 그리고 우리 학교에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바로 북한 이탈 주민들이에요.

“저는 사실 이게 숨길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한국 와서 처음 학교에 갔을 때 북한에서 왔다고 솔직하게 소개를 했고, 친구들도 다 잘 대해 줬어요. 어떤 편견 때문에 힘들었던 점은 없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어엿한 2학년이 된 20학번 박철주 학생도 북한 이탈 주민이에요. 북한은 공부를 잘하고 또 하고 싶다고 해서 모두가 다 대학에 갈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해요. 부모님의 출신성분, 안정적인 경제적 여건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군대를 다녀왔어야 하고, 또 부모님이 이혼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도 있다고 해요.

“시험 점수가 아무리 높아도 대학을 갈 수가 없었어요. 제가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아도, 다른 학생에게 주는 일도 있었죠.”
철주 학생이 한국에 온 건 17살 때였어요. 처음에는 북한을 떠나는 길인지도 모르고 따라나섰는데, 국경을 넘고 중국의 연길, 장백을 지나 라오스와 태국까지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하고 이동해서 탈북에 성공했다고 해요.

“일주일 만에 태국까지 왔어요. 오는 길에 어머니가 편찮으셨는데, 저는 어머니를 부축하면서 ‘무조건 같이 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왔던 것 같아요. 올 때는 힘들다고 생각할 새가 없었어요. 왜냐면 뒤를 돌아보는 순간 잡히니까요.”

북한 이탈 주민들은 잡혀서 북한으로 다시 가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탈북을 감행한다고 해요. 이렇게 직접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실감이 잘 안 됐어요. 철주 학생을 처음 만났을 땐 보통의 한국 대학생과 다름없어 보였거든요. 그런 덤덤한 모습 이면에 이렇게 힘든 시간이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답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철주 학생은 친구들과 농구를 하면서 많이 친해졌다고 해요(왼쪽 아래)
운동을 좋아하는 철주 학생은 친구들과 농구를 하면서 많이 친해졌다고 해요(왼쪽 아래)
한국에서의 생활은 사소한 것까지 북한과 다른 점이 정말 많았대요. 담임 선생님이 매년 바뀌는 것도 어색했고, 북한보다 단체활동이 적어서 심심하기도 했고요.

“북한에선 진짜 눈만 뜨면 행사거든요. 밤 10시까지 친구들이랑 공연 연습하고 그랬어요. 가을에는 농촌에 일손이 부족하니까 학생들이 그 기간에는 공부를 잠깐 멈추고 일손을 도와드리러 가는데 그게 나름 되게 재밌거든요. 그런데 한국에는 그런 게 없더라고요.”

철주 학생은 무엇보다 역사 공부가 가장 어려웠다고 이야기했어요.

“처음에는 정체성에 혼란이 많이 왔어요. 지금까지 북한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한국의 역사관을 가져야 하니까요. 기존의 저라는 존재를 없애고 새롭게 뭔가를 채워야 하는 것들이 좀 힘들었어요.”
철주 학생이 처음부터 서울대를 지원한 건 아니었어요. 그럴만한 자신이 없었다고 해요. 그런데 입시를 거치면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고, 그 아쉬움을 해결하지 않으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철주 학생이 서울대에 도전할 수 있도록 힘을 준 것은 바로 누나였어요.

“북한에 있을 때도 누나가 늘 ‘내 동생은 무조건 학교를 가야 된다’고 했었어요. 집안 사정이 너무 어려워서 누나는 저 뒷바라지하느라고 학교도 못 다녔는데도요. 한국에 와서 누나가 공부를 하고 대학에 가는 걸 보고 ‘아, 나도 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서울대학교에 합격했을 때, 철주 학생과 가족들은 모두 눈물을 쏟았어요.

“학교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그런 환경에서 살다가, 한국에 오니까 내가 노력하면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게 되더라고요. 이후에도 제가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좌절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자유전공학부에 입학한 철주 학생은 정치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어요. 두 개의 서로 다른 정치사상을 직접 겪어보면서 좀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대요.

“같은 사람인데도 어떤 국가에서 태어나는가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 국가의 정치적 환경이 어떠냐에 따라서 개인의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어요. 저도 지금 만약 북한에 있었으면 그냥 농부가 됐을지도 몰라요. 이런 학문이 있는지도 모르고 이런 세상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살았을 것 같더라고요.”

한국에 와서 가장 좋았던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철주 학생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유’라고 대답했어요. 그런 철주 학생의 꿈은 변호사가 돼서 자유를 침해받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해요.

“법을 아는 것이 결국은 자유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유라는 것이 어쨌든 법이 허용한 안에서의 자유인 거잖아요. 법을 공부해서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씩씩하게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철주 학생을 보고 있으니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벅차오르는 것 같았어요. 코로나 때문에 어려운 것도 있지만 다른 학생들과 같이 평범하고 고민 많은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해요.

“대학이라는 게 결국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좀 들어요. 특히 요즘 코로나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까 고민도 많아지는 것 같아요. 학점도 신경이 많이 쓰이고……. 어떤 대학 생활을 해나가야 할지 그런 질문들이 많이 생기는 요즘 같아요.”

한국이 이제는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철주 학생. 힘든 시간을 버텨내고 더 큰 희망을 꿈꾸는 철주 학생의 앞날을 스누새가 응원할게요!
답장 (15)
  • 해오라기
    해오라기
    큰 도전을 하는 모습이 매우 멋져요!!! 꼭 꿈 이루시기를 응원합니다
  • 어치
    어치
    철주 학생~~ 고생 많았어요... 저는 북한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외국인 학생이에요. 덕분에 이 글에서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었어요. 화이팅하세요!
  • 닭
    응원합니다!
  • 꿩
    앞날을 응원해요!!
  • 찌르레기
    찌르레기
    정말 감동적입니다. 응원합니다.
  • 꼬리치레
    꼬리치레
    법을 아는 것이 자유를 아는 것이라는 말씀에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저랑 같은 (복수) 전공 택하실 지도 모르겠는데 영광이네요
  • 까마귀
    까마귀
    저도 학부시절 탈북한 동기가 있었는데, 살아온 환경만 많이 달랐을 뿐 같이 놀고 배울점도 많은 친한 동기였습니다 ㅎㅎ 한편으로는 인생에서 저보다 더 큰 결정들을 해왔다는 점에서 존경스러운 점들도 많았구요.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정치학을 배우고 한국 정치를 바라보는 것에 대해서는 기대가 됩니다! 훌륭한 변호사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ㅎㅎ
  • 말똥가리
    말똥가리
    법의 허용안에서의 자유 공감합니다. 응원하겠습니다!!
  • 나무발발이
    나무발발이
    목숨을 건 탈북을 하고, 꿈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합니다. 저는 몇달째 출퇴근 시간과 잠자기 전까지 탈북민들의 사연이 담김 유튜브 영상을 보며 울다가 웃다가 하며 시간가는 줄 모른답니다. 그들의 사연이 철주 학생이 걸어온 길을 연상할 수 있게 합니다. 꼭 목표한 꿈을 이루시기 바라며, 응원합니다.
  • 올빼미
    올빼미
    자랑스러운 후배네요~ 뭐든 잘 할 수 있을거예요!응원합니다.
  • 거위
    거위
    평소 탈북민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 사람임데, 이렇게 같은 공동체 안에 있었다고 하니 친해지고 싶고 응원하고 싶어요. 화이팅!!!
  • 느시
    느시
    스누새는 유퀴즈의 유재석 같은 느낌이 들어요. 서울대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뻐꾸기
    뻐꾸기
    자유...... 소중한 단어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며 산 건 아닌가 싶네요.
  • 꿩
    요즘은 새터민 이라고 하죠, 탈북민에게는 '노력하면 보상을 받는다' 라는 자본주의/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논리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철주 후배님은 이 논리가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질 정도로 노력하고 성취해낸 멋진 후배님 이네요!자유를 침해 받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변호사가 되시길 응원합니다!
  • 조롱이
    조롱이
    스누새와 함께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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