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스누새가 만난 사람 - 카릴 카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건물에 있는 감골식당은 1년에 한 달은 할랄 음식을 내 놓지 않습니다. 이슬람 교인들이 해가 질 때까지 금식하는 아홉 번째 달(라마단)에는 손님이 없거든요. 올해는 5월 5일부터 라마단이라 카릴 카림 학생은 요즘 낮에 차 한잔도 안 마시네요.

“지난 체육 수업 때는 2시간을 실컷 뛰고 친구가 얼음물을 건내는데 목이 타긴 했지만 라마단 주간이라 사양했거든요. 친구 녀석이 왜 그렇게 몸에 안 좋은 종교를 믿느냐고 하길래, 간헐적 단식이 얼마나 몸에 좋은 줄 아냐고 물장난 치고 웃었죠.”
나노 기계공업 수업시간
이번 학기 가장 재미있게 듣고 있는 '마이크로-나노 기계공학' 수업
이렇게 웃을 수 있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기계항공공학부에 입학해 자기 소개를 할 때, 부산에서 1년간 갈고 닦은 한국어 5급 실력으로 “저는 이집트에서 온 카릴 카림입니다.” 했을 때 웃던 사람들이, “저는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입니다.” 하니 어디를 봐야 할 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되어 있었답니다.

어긋나던 시선이 마주치기 시작한 건 ‘창의공학설계’ 수업 때 조원들과 해동아이디어팩토리에서 팀플을 하면서부터였습니다. 이론 수업은 두 달만 진행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조별로 로봇을 만들어 학기말에 시연하는 수업방식은 엄청나게 신선했습니다. 카릴은 이집트에서 가장 좋은 공대를 2년 넘게 다녔지만 기자재가 흔치 않아 이론 수업만 받았습니다.

서울대의 해동아이디어팩토리는 공대생의 천국이었습니다. 24시간 열려 있는 그 곳에서 3D 프린터와 우드 커터기를 실컷 쓸 때면, 3년 전 용기를 내 경쟁률 200대 1의 정부초청장학생에 도전한 것이 얼마나 탁월한 선택이자 행운이었는지 생각하며 다시 한번 미소를 짓습니다.

랩 사람들과
학부생 인턴에 지원하려고 들른 바이오 로보틱스 실험실.
시간을 갈아 넣은 그의 픽업 로봇은 시험날 아무 것도 들어올리지 못하고 멈춰 버렸습니다. 그래도 노력한 표시가 났는지 학점은 A0가 찍혀 있었습니다. 서울대에서 공부한 세 학기 동안 기숙사와 301동만 왕복하면서 공부에 열중했는데 성적은 3점대 후반에 머물러 카릴은 조금은 아쉽습니다. 그럴 땐 앞으로 더 성실한 내가 되게 해 달라고 조용히 기도합니다. 기도는 신과의 퍼스널한 대화시간이라 홀로 조용한 곳에서 합니다.

기초교육원에서 '비한국계 외국인을 위한 글쓰기 기초'(올해부터 글쓰기 기초가 ‘대학 글쓰기’로 과목명이 바뀌었어요) 수업을 열어주지 않았다면 핵심교양은 다 망했을 지도 몰라요. 한국어학당을 1년 다니면 말은 어느 정도 하지만 글쓰기는 또 다른 장벽입니다. 그 벽을 못 넘는 외국인은 B학점의 문턱을 못 넘는단 말에 목이 콱 막혔어요. 유치한 수준이던 한글 작문을 매주 두 번씩 첨삭해 주시던 안순태 선생님 덕분에 지금은 제법 모양을 갖춘 리포트를 내고 있답니다.
학부장님 면담 중
학부장님 면담 중. 한국에 오기 전 온라인 강의로 만났던 교수님이 학부장님으로 계시네요.
카릴의 꿈은 장애인을 위한 재활 로봇을 만드는 로봇 공학자가 되는 거에요. 대학원에 진학할 랩도 정해 두어서 다음 학기에는 학부생 인턴으로 지원해 보려고 해요. ‘지중해인’ 특유의 사교성을 발휘하면 대학원 형들과도 잘 지낼 수 있을 거 같아요. 신이 주신 공학 재능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어요. 인생의 의미는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행복하게 사는 거라고 쿠란에도 그렇게 나와 있거든요.

스누새의 여행
답장 (1)
  • 논병아리
    논병아리
    스누새 화이팅!!
로그인하시면 답장을 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