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번째
열정으로 뜨거운, 가마
학교를 좀 다녀본 사람들이면 미술대학과 220동 사이 웅장한 흙가마를 보셨을 거예요. 아주 오래전부터 있던 것 같은데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불은 언제 때는지 스누새는 항상 궁금했었어요. 실제로 사용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미대 이곳저곳에서 가마에 대한 기억을 들어봤어요.

미대 가마는 서울에 있는 유일한 장작가마로, 전통식 ‘망생이 가마’라고 한 대요. 원래 장작가마는 연기도 많이 나고 화재 위험이 커 대도시 주변에는 잘 없어요. 우리 학교 가마가 특별한 이유지요.
학생들에게 뿌듯한 추억으로 남은 장작가마 소성의 밤
마지막일 수도 있었던 작년 가마 소성의 밤
하지만 그만큼 자주 사용하지 않는 데다 안전 문제도 있어서 가마를 철거하자는 이야기도 있었대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작년에는 아주 오랜만에 장작가마를 통해 소성하는 행사가 열렸답니다. 소성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당시를 어디서도 경험하기 어려운 특별한 추억으로 기억하더라고요.

“도예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로망 같은 것이었어요. 가스가마나 전기가마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원초적인 효과들이 있거든요. 그리고 그 과정도 굉장히 뜻깊었죠. 학과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소성이 문제없이 잘 이루어지라고 고사도 지내고 교대로 불도 지키고. 과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것 같았어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윤정, 공예전공 15학번)
가마는 오랜만에 지펴진 불을 쉼 없이 거칠게 내뿜습니다.
사진으로 봐도 굉장한 것처럼 가마에서는 엄청난 열기와 불꽃이 뿜어져 나왔어요. 이렇게 한 번 소성할 때마다 주변 가득 검은 연기를 뿜어내니 쉽게 사용하지 못했던 사정을 알 것만 같아요.

“중간고사 때 한 번, 기말고사 때 한 번 이렇게 땠었어요. 가마 안에 가득 작업물을 넣고 때워야 해서 장작값도 많이 들고, 그 가마를 다 채우기 위한 시간도 필요했으니까요. 하루가 넘는 시간 동안 가마에 달라붙어서 나무를 쪼개 넣어주고 관리하는 일이 보통 일도 아니었고요. 220동을 전부 돌아다니면서 출입구에 가마 소성한다고 공지 붙이고, 경비아저씨께 말씀드리고 했던 일들이 떠오르네요. 그런데도 가마를 뗄 때 신고가 들어오기도 했죠.”(2012년 <전통도예> 수업을 들었던 이재준 작가, 공예전공 06학번)
정성으로 쌓고 열정으로 태운 가마
그런데 이 가마의 탄생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장작가마는 90년대 말 미대 대학원생들이 경기대학교 서영기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서 만들었다고 해요. 학생들이 가마를 직접 만들었던 것이죠! 지금은 남서울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는 이춘복 교수님(92학번)이 바로 그 학생 중 한 명이셨어요.

“그때 조교를 했었는데, 다른 선배 두 명과 같이 가마를 만들었어요. 가마의 첫 불을 본 것이죠.”

우리 가마가 ‘망생이 가마’ 잖아요. 망생이는 황토와 짚을 섞어 만든 벽돌 같은 건데 이것을 아치 형태로 쌓아 가마를 짓는 거라고 해요. 이춘복 교수님은 학교에 망생이들을 놓을 공간이 없어 단양의 도예촌에서 만들어 공수했다고 해요.

“장작을 만든 후, 불을 땔 나무가 필요하니까 학교 주변에 있는 아까시나무들이나 태화산 학술림에서 장작을 구해왔어요. 근데 모자라니까 경기도 이천 어딘가에 길을 낸다며 멀쩡한 나무들을 없앤다고 해서 그걸 주우러 다니기도 하고…. 진짜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리운 추억이네요.”
오늘의 서울대 도예의 전통을 있게 한 숨은 공신
20여 년간 미대의 전통을 만들어 온 가마
작년 소성 행사 때 참여한 김대웅 작가는 우리 학교의 장작가마를 보고 엄청나게 감탄하셨어요. 이런 전통식 가마가 서울 안에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고, 가마로 인해 학교의 교육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는 것에 감명을 받으셨대요.

“서울대 도예 전공은 도자 디자인이 매우 선구적이에요. 그게 바로 장작가마가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요? 일반적인 트렌드를 따라가는 데 급급해하지 않고, 넓은 경험의 범위 내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선택할 기회가 있었던 것이죠.”
우리 손으로 만들었고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했던 가마. 장작가마가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는 건 분명한 것 같아요. 처음에 가마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땐 다들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어요. 그래서였을까요? 미대 내부에서 가마를 보존하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어요!

“장작가마로 작업하는 것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직감으로만 알 수 있는 어떤 예술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것은 도시에서 교육을 받는 사람들에게 흔한 기회가 아닌 거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면도 있고 주변 건물들에도 피해를 주니까, 환기시설을 보완한다거나 해서 조금 개선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이재준 작가)

스누새는 미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가마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는지는 조금 알 것 같아요. 모두가 마음을 모아 지켜낸 만큼 앞으로도 오랜 세월 우리 곁에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대 도예인들의 열정과 예술혼이 깃든 이 가마에서 더 많은 경험이 이뤄지고, 더 좋은 작품이 탄생하길 기대해볼게요.
20년 서울대 도예인들의 열정과 예술혼이 깃든 가마, 앞으로도 오래오래 함께하길!
※ 모든 사진은 미술대학 공예전공에서 제공해주셨습니다.
답장 (2)
  • 말똥가리
    말똥가리
    캠퍼스에 가마가 있다는걸 처음 알았어요~고마워요 스누새!
  • 제비
    제비
    재밌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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