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번째
사라지는 것들 | 안녕, 고마워, 28동
예년 같은 북적임이 없는 허전한 4월, 학교에는 기억에 남을만한 장소가 사라지는 큰 일이 있었어요. 바로 1976년에 준공된 이래 40여 년 간 수많은 교수님과 학생들이 거쳐 갔던 곳, 28동이 재건축에 들어간 것이에요. 오늘은 새로운 탄생을 준비하고 있는 28동 자연대 대형 강의동 이야기를 하고자 해요.
시간이 멈춘 듯 빛바랜 그대로, 28동은 늘 그곳에
28동은 1, 3층에 대형 강의실이, 2, 4층에 학생회실과 동아리방이 있는 말 그대로 ‘학생을 위한 건물’이었어요.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이곳에 정이 많이 들었나 봅니다.

“신입생 때 자연대 학생회 생활을 시작하고 28동 학생회실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회의하고 밥 시켜 먹고 공부하면서 밤을 새고…. 시험기간에 간식을 나눠주면 28동 앞이 자연대 학생들로 북적였는데 헐린다고 하니 섭섭하네요.” (송가현 물리·천문학부 학생)

자연대 학생회장인 송가현 학생은 철거를 준비 중인 28동에 한참을 눈을 못 뗍니다. 입학하고 곧바로 학생회 생활을 시작하고 내리 3년을 공부하고 먹고 잤던 곳이니 가현 학생에게는 ‘집’만큼 편안하고 특별했던 공간이 이곳입니다.
철거를 준비 중인 28동과 가현 학생
가현 학생처럼 28동에서 사람들은 친구들과 추억을 만들고, 배우고, 성장했습니다. 그 중 일부는 다시 돌아와 이곳에 섭니다.

“지금 28동의 테이블은 따로따로 의자에 붙어있지만 30년 전에는 교회처럼 기다란 책상이었어요. 거기서 자연대뿐만 아니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교양 수업이 열렸기 때문에 온갖 커닝 메모가 책상 모퉁이에 쓰여 있었죠.”

89학번인 화학부 이동환 교수님은 학생시절 이곳에서 ‘유기화학’, ‘생화학’ 같은 수업을 들었습니다. 민주화 운동으로 유급과 징계를 반복하던 동기 선·후배들과 같이 이곳에서 배움을 함께했습니다.
17년 전 수업 듣던 곳에서 교단에 오른 화학부 이동환 교수님
“미국 유학 후 서울대로 교수가 되어 돌아와 가르친 첫 수업의 강의실이 28동이었어요. 17년 동안 외지를 떠돌다가 돌아와서 내가 수업을 듣던 28동 강의실에 교수로 서니, 가슴이 뭉클하더라구요.”

얼마 안 있으면 28동이 헐린다는 소식에 이동환 교수님은 섭섭한 마음이 앞섰습니다. 당장 2019년 2학기가 28동의 마지막 학기가 된다는 말에 깨끗하고 편리한 다른 곳을 두고 굳이 28동에 수업을 개설하셨다고 해요. 덕분에 교수님의 지난 학기 ‘무기화학’ 수업을 수강한 30여명의 친구들은 의도치 않게 28동의 마지막을 함께한 셈이 되었고요.

“제 수업을 수강한 아이들은 저 때문에 열악한 28동에서 수업을 들은 거라 미안하기도 해요.(웃음) 그나마 오후 수업이라 오전 수업만큼 춥지는 않았을 거예요.”
교수님도, 학교도 각자의 방식으로 28동을 추억합니다.
교수님은 처음 28동이 철거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혼자만이라도 이곳을 기념하고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셨나 봐요. 수천 명의 손때가 묻었을 28동의 황동색 문고리를 촬영해서 ‘샤’ 모양을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따서 교수님 실험실의 머그컵에 새겼다고 해요.
많은 분들이 저 황동 문고리를 기억하시죠?
자연대도 이곳을 거쳐 간 많은 사람들이 느낄 서운함을 달래주기 위해 28동의 오래된 것들, 예를 들어 빛바랜 문고리, 벗겨진 난간, 희미해진 입간판, 노란 때가 낀 벽돌을 모아 모두가 추억할 수 있는 굿즈로 제작할 계획이라고 해요. 낡았다는 이유로 많은 것들이 사라지는 캠퍼스에서, 옛것을 추억할 수 있는 노력들이 있어 다행입니다.
자연대의 ‘주변’에서 ‘중심’으로
“28동은 오로지 강의실과 동아리방만 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연구시설이 있는 다른 건물들에 비해 방치되어 온 것 같아요.”

김판기 자연대 기획부학장님 말씀처럼 지금의 28동은 자연대의 소외된 공간으로 잊혀져 왔었어요. 그렇지만 이제 이 건물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화려하고 멋진 새 건물이 들어서겠지요. 여름에도 한기가 느껴지던 강의실이 쾌적하고 깔끔한 첨단 강의실이 되고, 학장실과 행정실, 학생자치공간까지 들어서니 새 28동은 더 이상 자연대의 ‘주변’이 아닌 ‘중심’이 될 꿈을 꾸고 있어요.
그래서 스누새도 묵묵히 서울대의 역사를 장식하던 옛 28동을 홀가분한 마음으로 보내주려구요. 그리고 새 28동이 자연대의 중심이 되어 학생들의 새로운 배움터가 되기를 바라볼게요.
서울대 인스타그램으로 도착한 28동의 기억들
자연대 학생회 활동이 모두 여기서 이뤄졌었는데...! 새 단장한 모습 만나고 싶네요 @mount_riv98
시험지보다 작은 접이식 책상... 다신 만나지 맙시다 @2.z.1
관악의 모든 음기가 모인다는 그곳. 여름에 피서하러 가야되는데 시원섭섭하네요ㅠ @and__yc
여름엔 춥고 겨울엔 더 추운 28동 안녕... @doyoon0_0
낡고 춥고 복작복작 했지만 우리의 학창시절을 함께했던, 안녕, 고마워, 28동!
답장 (3)
  • 어치
    어치
    02년, 자연대 학생회에서 28동 벽에 빔을 쏴서 월드컵을 틀어줬죠.
    시험공부하느라 학교에서 밤새던 날, 시험 하나 망치고 28동 벽을 보며 친구들과 흥분하여 16강 진출을 기뻐하고 결국 다음날 시험도 망쳤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22동이 과방이었던 우리 과였던지라 항상 28동에서 과 행사를 하곤 했습니다. 수많은 강의를 들은건 물론이고요.
    함께 뛰던 우리들은 다 학교를 떠났지만, 우리의 추억을 간직했던 오랜 건물이 사라지는건 아쉬움도 많이 남네요.
    더 좋은 곳으로 변하여 후배님들의 추억을 새롭게 만들어주길..
  • 뻐꾸기
    뻐꾸기
    아...28동.....잊었던 기억들이 소환되네요
  • 아비
    아비
    연필 바닥에 두면 혼자 굴러가는 강의실...시원섭섭하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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