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번째
2019년 12월 31일, 스누새가 만난 사람들
2019년 마지막 날, 모두들 바쁜 걸음으로 사라진 캠퍼스에는 적막이 가득합니다. 어디선가에서 의미있는 새해를 맞고 싶은 마음이 발걸음을 재촉하나봐요. 방학을 맞아 떠나는 학생들, 종무식을 막 마친 직원들, 연구실의 불을 끄고 집으로 나서는 교수님들. 그런데 저기, 텅 빈 캠퍼스의 한산함을 깨고 관악생활관(기숙사)의 불빛이 하나 둘 켜져 있네요. 새해를 혼자 학교에서 맞이하는 걸까요? 궁금해진 스누새가 학생들을 만나러 날아가 보았습니다.
2019년 12월 31일 PM 11:00, 관악생활관
방학이라 기숙사는 좀 한산할 줄 알았는데 밤이 되니 은근히 많은 창가에 불이 들어옵니다. 강민근 동조교는 그 밝은 창문 중 하나를 맡고 있어요. 동조교는 연구와 근무로 말일에도 관악을 떠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동조교는 각 동마다 거주를 하며 학생들의 입·퇴거를 지원하고, 각종 민원처리를 도와주는 대학원생입니다. 최근 있었던 ‘퇴거’가 가장 힘들었다는 동조교. 기숙사의 아주 중요한 연례행사 중 하나인 퇴거는 한 동에서만 무려 140여명의 퇴실이 하루에 진행된대요. “퇴거자들이 오후 2~3시쯤 몰리는데 그때 많이 바쁘죠. 대체로 한 번에 청소 통과를 못해서 늦어지기도 하고. 11시부터 청소 검사를 시작해서 오후 7시 반에 퇴거한 입주자도 있고, 5시까지 퇴거해야 하는데 3시까지 자고 있는 입주자도 있고….”

그래도 기숙사에 힘든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글로벌 생활관 8층에 야외 테라스가 있는데 거기서 보는 야경이 예뻐요. 기존에 없던 건물에서 보는 시각이라 새롭기도 하고요.”

학생들에게 카카오톡 공지를 잘 읽어달라고 당부한 동조교, 새해엔 업무가 너무 힘들지 않길 바래봅니다.
연말에도 남아있는 학생들을 위해 근무중인 강민근 동조교
연말에도 남아있는 학생들을 위해 근무중인 강민근 동조교
6인실이어서 유일하게 ‘거실’이 있는 919C동에 혼자 공부하는 학생도 보이네요! 지난 3월 간호학과에 편입한 박대로 학생에게는 ‘기숙사 거실’이 올해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낸 장소이자 기억에 남는 장소입니다. “전공과목을 처음 접하느라 어려웠는데, 모르면 찾아봐야 하니까 온갖 책을 다 펼쳐놓고 했거든요. 다 들고 다니는 게 힘들어서 어딜 못가겠더라고요.”

이제 연건에서 같은 전공생들과 주로 시간을 보내게 될 박대로 학생. “올 한해 기숙사에 산 게 참 좋은 기회였던 게, 제가 있는 방만해도 전기전자공학부, 화학공학부, 영어교육학과 등 다양한 친구들이 살거든요. 또 만약 통학을 했다면 수업만 듣고 학교 밖으로 나갔을 수도 있는데 여기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관악의 사람들, 공간들, 시설들, 갖가지를 충만하게 경험한 것 같아요.”
지난해 기숙사 거실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다는 박대로 학생
지난해 기숙사 거실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다는 박대로 학생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니, 기숙사의 최고 화두는 역시 함께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룸메이트와 거의 가족처럼 지낸다는 주하민 학생처럼요. “저는 친구랑 24시간 같이 붙어 있는 것이 너무 좋더라고요. 새벽에 유투브 같이 보다 아침에 머리 말리고 화장하면서 수다 떨고, 또 서로 깨워주거나 뭘 두고 나오면 SOS하고.”

주하민 학생은 관악생활관 자치회장이기도 한데요. 그저 먹고 자는 곳이 아닌 대학생활을 보다 풍성하게 만드는 것도 자치회의 큰 역할이라고 합니다. 영화제, 사진전, 콜로키움, 음악회, 공청회, 한울제, 시험기간 간식 나눔까지 진행했다고 하네요. “개인적으로 행사 중 사진전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시설과에서 사진을 많이 보내주셨는데, 눈 위에 ‘아이 러브 관악사’라고 쓴 사진이나 옛날 기숙사 사진 같은 것들이 기억에 남아요. 직원 선생님들과 어우러질 수 있어서 좋았고, 스쳐지나가는 일상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도 됐어요.”
(좌) 옛 기숙사 전경(2006년), (우) 2015년 12월 눈내린 날 아침 기숙사 마당 (관악생활관 직원 배기탁 선생님 촬영)
(좌) 옛 기숙사 전경(2006년)
(우) 2015년 12월 눈내린 날 아침 기숙사 마당 (관악생활관 직원 배기탁 선생님 촬영)
우간다에서 온 마틴은 어린 룸메이트 친구 때문에 고생했던 일담을 들려줍니다. “저 1학년 때 룸메이트가 4학년이었는데, 저보다 나이가 너무 많으니까 오히려 저를 매우 존중해줬어요. 존댓말로 “마틴, 불 끌까요?”, 아침에 일어나면 “너무 일찍 가야해서 미안해요.” 그러면서요. 그런데 그 분이 졸업하고 신입생 룸메이트가 들어왔는데 늦게까지 게임을 하는데다 마우스 소리가 엄청 났어요. 제가 그만하라고 말은 못하고 소리 안 나는 마우스를 주면서 쓸 거냐고 물어봤는데, 그걸로 하면 재미가 없대요.”

연구인턴십 때문에 관악을 떠나지 못했다는 마틴, 알찬 겨울방학이 되길 기원합니다.
고향이 그리울 땐 요리를 한다는 마틴 학생
고향이 그리울 땐 요리를 한다는 마틴 학생
기숙사에서 대학원 생활을 시작했다는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서동규 학생은 기숙사에서 연구실까지 반복해서 걷는 일상 덕분에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도 하고, 새소리, 물소리에서 많은 위안을 얻었다고 합니다.

한산해진 기숙사 덕분에 빨래하기는 더 편해졌다고 하네요. 연구를 위해 통학을 포기하고 다음 학기를 준비하겠다는 포부, 새해에도 새로운 룸메이트와 잘 지낼 수 있게 해달라는 소망, 꼭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좌) 혼자 외로울 땐 ‘코인 노래방’, (우)방학이라 그래도 좀 한가해진 세탁실
(좌) 혼자 외로울 땐 ‘코인 노래방’, (우)방학이라 그래도 좀 한가해진 세탁실
(좌)수다떨기 좋은 공동 조리실, (우)시험 기간에는 독서실로 운영되는 919동 식당
(좌)수다떨기 좋은 공동 조리실, (우)시험 기간에는 독서실로 운영되는 919동 식당
스누새가 새해 소망을 응원합니다!
주하민 : 성악과 학부 3학년 “지난 해 너무 바빠서 거의 번아웃 증후군이 올 뻔 했거든요. 적당한 휴식과 함께 끝까지 열정을 잃지 않는 게 새해 목표입니다.”
- 주하민 : 성악과 학부 3학년
강민근 : 지리교육과 석사과정 “탈 관악! 논문 빨리 써서 졸업해야죠. 그리고 좀 더 상냥한 동조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강민근 : 지리교육과 석사과정
박대로 : 간호학과 학부 3학년 “저는 지난 1년간 새로운 공부를 하느라 시행착오가 많았거든요. 새해에는 시행착오는 좀 덜 겪으면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내 시간표대로, 매 학기마다 그 전보다는 성장하는 시간을 살자고 다짐해봅니다.”
- 박대로 : 간호학과 학부 3학년
마틴 : 전기정보공학부 학부 4학년 “할 일 엄청 많죠. 일단은 인턴 잘 마치고 졸업도 해야 하고. 제가 8월 졸업 예정인데 취직을 할까, 집에 갈까, 대학원에 갈까 그런 거 생각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 마틴 : 전기정보공학부 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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