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신임교수의 첫 해, 강예린 교수님
여러분, 오늘 하루도 힘차게 시작하셨나요? ‘시작’이라는 말에는 언제나 설레는 기분이 담겨있는 것 같아요. 그런 두근거리는 마음은 비단 캠퍼스맵을 손에 들고 분주히 다니던 신입생들만의 것은 아니겠지요. 오늘은 지난 봄 부임하신 신임교수님께서 관악의 첫 해를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 들어보려 합니다. 스누새는 건축학과 강예린 교수님께 날아갔어요. 학교 밖에서 촉망받는 신진 건축가로 활약하다 오신 교수님의 눈을 빌리면 맨날 봐서 익숙해진 이 공간도 좀 더 새롭게 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마인드맵처럼 뻗어 나간 건축가로서의 시간
“그냥 맨날 고3인 것 같은 느낌?” 안 바쁜 사람 하나 없는 서울대라지만 강예린 교수님의 포트폴리오를 엿보면 교수님이야말로 최근 10년간 제일 바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건축사사무소이자 젊은건축가그룹 SoA의 소장으로서, 남가좌동과 제주의 주택부터 우포와 안양의 도서관에 이르는 40여개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더해 수차례의 전시와 강연, 저술과 공모전까지……. 최근까지도 저명한 건축상들을 다수 수상하고 끊임없이 작업을 하고 있는 이 건축가에게 교수직은 다소 조심스러운 결정이기도 했습니다. “가르치는 것은 좋아하는 것 같은데 삶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할지 잘 모르겠는거예요.”

쉴틈도 없이 수업과 작업을 병행하고 계시는 교수님이지만, 10년 전만 해도 일이 없어서 막막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니 그때 사무실 동료이자 오랜 친구이며 남편인 이치훈 소장님과 함께 그린 마인드맵이 오늘날에 이르는 지도가 되었다고 해요. “우리가 건축이라고 하는 것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가 관심 있는 것들과 할 수 있는 것들을 그려놓으면 재미있지 않을까 해서 했는데, 마인드맵을 그린 다음에 우연찮게 그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들이 주어졌던 것 같아요.” 하나의 작업은 기회를 만들고, 다시 그 작업은 또 다른 작업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지붕감각(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윤슬(만리동), 스튜디오m(파주)
지붕감각(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윤슬(만리동), 스튜디오m(파주)
“펼쳐놓은 것만큼 나아갔던” 그간의 성장이, 작업을 하며 만났던 “사람들과의 관계들”, 그리고 기술과 재료부터 사회와 문화에 이르는 폭넓은 “관심의 오지랖” 덕분이라는 교수님.
“개인적인 의미에서 좋은 건축은 땅에 바짝 붙어있는 건물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좋은 개념을 써서 공중부양 시키려고 해도 건축이 땅을 떠나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았나.” 이를테면 교수님에게 땅은 흙이며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 위를 밟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삶과 역사의 토대이기도 하므로, 그 모든 것들과 두루 관계를 맺는 것이 바로 건축일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어떤 모든 것들보다도 건축이 가지고 있는 현존성, 그 물성을 무시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 저변을 더 탄탄하게 고민해야만 그렇게 만들어진 현존성이 이상하지 않게 느껴질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라는 공간 바라보기
교수님이 사람과 지식의 거대한 관계망인 학교에 오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리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친 뒤, 이제는 건축학과 교수로서 오랜만에 밟는 교정. 제일 좋아했던 동선인 도서관 뒤편부터 자연대까지 이어지는 벚꽃길이 없어졌다며 아쉬움을 표하시네요. “너무 밀도가 높아져서 기존에 가져왔던 감각이 달라진 것 같아요. 제가 길을 잃게 될지는 몰랐는데 길을 한번 잃은 적도 있었거든요. 아직까지는 좋은 공간을 발견하지는 못했어요. 뭔가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좋다고 느끼는데 다 새롭기만 하고 꽉꽉 차 있으니까. 좋은 공간이 없다는 게 아니라 그것을 이 짧은 시간에 느끼기에는 어려워서요.”

그런 교수님께 다행히 흥미로운 장소가 있다면 중앙도서관이 아닐까합니다. 평소 책과 도서관에 대한 관심이 많아 『도서관 산책자』를 저술하고 몇몇 도서관을 짓기도 한 건축가의 시선은 남다른 데가 있습니다. 교수님이 보기에 중앙도서관은 서가 간 의외의 연속성이 많다고 합니다.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장서가 늘어나다 보니까 500번 건너편에 이상하게 800번이 있고 이런 식이잖아요. 약간 외도하기 좋은 공간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못하고 봤는데 이번에 책 찾으러 가서 봤더니 아니 여기 왜 이런 게 붙어있지? 싶었죠. 쓸데없이 찝쩍대는 느낌으로 서가를 다닐 수 있으니까 좋더라고요.”
새로운 만남, 새로운 관계
서울대에서의 행보를 시작한 교수님은 마침맞게 올해 처음으로 새내기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소규모 설계수업은 이전에도 해왔지만 주로 고학년을 맡아 와서 1학년들과의 만남은 새로움과 당혹의 연속입니다. “많이 고민을 했었어요. 이 인류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웃음). 조금 더 진지한 고민들을 하는 친구들만 보다가 ‘건축이 뭐지’ 하는 친구들을 보니까 그 막연함이 좀 무서웠어요. 사실 그런 것은 강의로 채울 수 있는 부분보다는 본인이 직접 해보고 또는 문화적 내공을 쌓아가면서 형성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설계수업은 자기가 작업을 진행하면 그게 어떤 방향으로 가면 좋을지 가이드 하는 작업이거든요. 질문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경험적 기준이 없는 친구들에게 뭘 얘기해줘야 하나 하는 고민이 있었죠. 똑똑한 친구들도 많고 실제로 대면하니 재미있기도 해요.”

자신의 건축학과 시절을 떠올리면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특강과 설명을 듣고 함께 얘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는 교수님은 이곳에서도 학생들과 대화와 질문 주고받기를 최우선의 목표로 삼으신 듯 합니다. “건축과라고 하는 게 결과적으로 공동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서로 프로젝트를 보고 같이 얘기하는 그런 커뮤니티 문화가 중요하죠.” 교수로서의 목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계속 나아지거나 새로운 게 쌓여야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기본적으로 제가 나아지지 않으면 수업이나 이런 게 계속 정체가 되는 거잖아요. 제가 계속 질문하지 않으면, 저 자체가 질문이 없어지면, 제가 학생들한테 할 질문이 없어지지 않을까요?”

새로운 것들을 쌓는 일,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전과 다르게 생각해보는 일은 아마도 늘 새로운 공간을 설계하고 새로운 공간을 찾아다니는 부단한 여정 속에서 가능했을 것입니다. 학생들에게도 역시 자신의 공간,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길 당부하시네요. “신림동을 좀 떠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안이 전부가 아닌데 그걸 잊고 사는 것 같아서요. 잘못하면 자기 세상이 다라고 생각하기 쉬우니까 여길 좀 벗어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펼쳐진 마인드맵을 따라 이번엔 관악에서의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하신 교수님께서 또 어떤 관계의 건축물을 쌓아올릴지 궁금해지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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