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이기지 않는 야구’, 야구감독 이광환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기틀을 마련하고 유수의 구단들을 지휘한 전설의 감독이 10여 년 동안 무보수로 ‘서울대학교 야구부’를 이끌어 오셨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그것도 학생들이 행여 다칠까 매일같이 손수 야구장에 물을 뿌리고 돌을 고르던 어른이 바로 그 저명한 감독이라는 사실을요. 이광환 감독님이 ‘제 9회 서울대학교 사회봉사상’을 받으신다는 소식을 듣고 스누새가 야구공만큼 빠르게 날아가 축하드리고 왔답니다.
“힘들어도 할 수밖에 없는 거지, 흐르는 물을 막을 수는 없으니까.”
근 40년간 야구계의 사령탑으로 살아오신 감독님께 감독일의 시작은 ‘업’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봉사’였습니다. 국민학교 4학년 때 옥수수빵을 먹으려고 야구를 시작해서 이내 신인왕에 최우수 선수상까지 받는 선수가 되었고, 폐지 위기에 놓인 모교 야구부를 도우려고 감독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때 내가 29살입니다. 지금 보면 부족한 게 많지. 혈기만 왕성하고. 그런데 이 혈기왕성함이 40년 넘게 지속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자마자 OB베어스의 코칭스텝으로 스카우트된 감독님은 이듬해 LA다저스의 교육리그를 다녀오게 됩니다. 1986년도에는 일본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그 다음 해에는 미국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으면서, 메이저리그 풀 시즌을 경험한 감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즌운영부터 선수훈련방식, 투수분업화까지 시스템 자체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한국프로야구를 바꾸기 위해 모든 열정을 쏟았던 감독님을 이해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모두의 반대를 거스르며 혼자 걷는 길은 힘들었지만 언젠간 모두 알게 될 거라는 확신으로 버티셨다고 합니다. 결국 OB베어스를 떠나 LG트윈스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고서는 선수들을 모두 데리고 미국으로 가게 됩니다. “백날 얘기해도 안 되겠다, 직접 보여줘야겠다, 생각한 거지.” 감독님은 교육리그 동안 선수들에게 매일매일 느낀 점을 발표하게 했고, 선수들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빛나는 LG트윈스의 황금기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1994년 LG트윈스 한국시리즈 우승
1994년 LG트윈스 한국시리즈 우승
‘이기지 않는 야구’를 통해 ‘같이 뛰는 삶’을 알려주기
감독님은 2010년 서울대와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만든 지도자 교육기관인 ‘베이스볼 아카데미’에 초대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서울대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내가 자진해서 한다고 했어요. 보니까 야구부가 있긴 한데, 예산도 없고 유니폼도 없고 운동장도 돌투성이야. 눈에 밟히니까 도와줘야겠다 한 거지. 나는 내가 감독이라고 생각 잘 안 해요. 도우미라고 생각하지.”

하긴 야구부에서 하신 일들을 보면 대개 ‘감독 외의 일들’이라 ‘도왔다’는 말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습니다. 공을 던지고 치는 방법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궂은일도 자신의 몫으로 삼으셨으니까요.

엘리트 선수들로 이루어진 타 대학 1부 리그 야구팀과 달리 아마추어 선수들로 이루어진 서울대 야구부는 연패 행진이었습니다. “남들이 다 1승 언제 하냐고 물어. 그러면 내가 말해요. 그거는 프로야구 10번 우승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안 되는 걸 억지로 하려고 하면, 애들 다 부상입고 공부는 공부대로 안 되고 결국 다 도망가 버린다고.”

감독님이 야구부에 바랐던 것은 ‘승리’가 아닌 ‘마음가짐’ 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기는 것 밖에 몰라요. 철학이 없는 야구야. 서울대만이라도 달라야 해요.” 팀플레이와 희생정신, 인내심과 협동심, 감독님은 우리 학생들에게 어떻게 함께 어울리는지를 알려주고 싶었다고 하세요.

서울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서 가장 좋았던 순간은 선수들이 바뀌는 게 눈에 보이는 때였다고 합니다. 워낙 비실비실해 보여서 야구는 못하겠다, 내심 생각했던 학생이 2년 만에 야무진 선수가 되는 걸 보면서 “내 판단이 일렀구나, 사람의 능력은 모르는 거구나,” 깨달으셨다고 해요. “내가 애들한테 배운 거지, 인간의 능력을.”

그렇게 학생들이 각자의 능력을 키워나가서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사회에 나가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기뻐 죽겠다”하시는 감독님이니, 힘들었던 기억도 결국 학생입니다. “딱 하나 힘든 게 애들 다칠 때. 그래서 내가 운동장에 나가서 지키고 앉아 있는 거야. 선수들은 피할 능력이 있는데 얘들은 피할 능력이 없잖아. 다치고 나면 며칠간은 마음이 안 편하다. 걔가 완치될 때까지는.” 학생 걱정 말고 힘드신 건 없으시냐고 한 번 더 여쭤보니 그저 웃으시네요. “내 스스로 힘들 것 같으면 진작에 손 놓았지.”
넉넉잖은 제반 사정에도 불구하고, 열정만은 우승팀 못지 않은 서울대학교 야구부. MBC 장학퀴즈 광고 주인공이기도 했답니다
넉넉잖은 제반 사정에도 불구하고, 열정만은 우승팀 못지 않은 서울대학교 야구부. MBC 장학퀴즈 광고 주인공이기도 했답니다
야구를 위해 헌신한 삶, 야구 그 자체인 삶
해야만 하는 것, 바뀌어야 할 것들. 감독님 눈에는 보이는 너무 게 많아서, “프로야구 감독 때보다 은퇴하신 뒤에 더 바쁘시다”는 주변의 말은 과장이 아닙니다. 이번 수상하신 사회봉사상은 그런 노고에 대한 서울대학교의 감사를 담은 것입니다.

최근 들어 건강이 좋지 않아 제주도에 내려가신 감독님은 이제야 비로소 휴식을 찾으신 듯합니다. 작고 소소한 행복, 큰 영예와 성취들, 지난한 격무,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승리와 패배’, ‘성취와 실패’로 설명할 수 없는 이광환 감독님의 삶은 야구 그 자체입니다. “이기면 기쁘고 지면 슬프고 단순히 이런 게 아닙니다. 어떻게 인생이 맨날 즐겁냐. 보는 사람이 이 경기 속에서 무엇을 느낄지, 내가 지더라도 보기 좋은 장면인지, 이런 것이 다 인생이지요”

많은 목표들을 이뤘고 이제 어디서 부르면 못 간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자주 못와서 제일 마음에 걸리는 게 서울대학교 야구부”라고 말씀하시는 감독님, 감독님께 야구의 철학을 배운 선수들은 어디서든 멋진 인생의 시합을 계속 할 것 같습니다.
서울대학교 야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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