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번째
나누어서 얻었습니다: 경석이의 부산행
우리의 삶을 단숨에 바꾼 바이러스의 혼돈 속에서, 그래도 우리가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위기에도 몸을 사리지 않고 맞서는 영웅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코로나19에 대응해 소임을 다하는 많은 서울대 사람들 중, 오늘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스스로 작은 힘을 보탠 한 학생의 이야기를 할까 해요.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구·경북지역에 바이러스가 크게 확산하던 지난 2월 말, 사범대 지리교육과 배경석 학생에게 뉴스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남다른 죄책감으로 다가왔어요.

“뉴스에서 의료인력이 탈진한 모습을 보다 보니까 갑자기 뜨거운 게 올라오더라고요. 원래 하던 보육원 봉사활동도 코로나로 못 하게 되었고 개강도 연기돼서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되겠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석 학생이 대구·경북 모든 보건소에 보낸 이메일
경석 학생이 대구·경북 모든 보건소에 보낸 이메일
경석 학생은 작은 보탬이 되고 싶어 대구·경북 보건소 스무 곳에 인력이 필요하면 달려가겠다는 이메일을 보냈어요. 하지만 연일 터져 나오는 환자들 때문에 현장은 아수라장, 보건소에서는 의료인력이 아닌 봉사자까지 챙길 여력이 없었어요.

다행히 한 보건소 관계자가 부산 해운대구청에서 봉사자를 찾는다는 것을 알려줬고, 경석 학생은 걱정하는 부모님을 설득하고 무작정 부산으로 떠났어요.

작은 보탬이라도 되기 위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부산에 도착해 바로 해운대구청으로 간 경석 학생은 구청 출입자를 통제하면서 명부를 작성하고 방역 · 구호 물품을 정리하는 일에 투입됐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출입자 명부를 작성한다는 게 워낙 생소한 일이라 거칠게 항의하는 민원인들이 많아 상처를 받기도 했대요.

“첫날 제일 힘들었어요. 명부 작성을 왜 해야 하냐며 펜을 집어 던지는 사람도 있고, 마스크도 안 쓰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 때문에 구청이 마비되는 일도 있었어요. 그런 일을 겪고 나니 ‘내가 너무 객기를 부렸나?’ ‘이러려고 멀리서 왔나?’ 후회도 들더라고요.”
“비의료 인력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지만, 현장에 혼돈이 생기지 않게 정리하는 일을 할 수 있었어요.”
“비의료 인력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지만, 현장에 혼돈이 생기지 않게 정리하는 일을 할 수 있었어요.”
마스크 1장의 남다른 가치

해운대구청에서의 일주일은 그동안 미디어로 접한 코로나 상황과 현실의 괴리를 알게 된 시간이기도 했어요.

“생각보다 구청에 일자리 찾으러 오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누가 봐도 남루한 옷을 입고 몸이 불편하신…. 한번은 거동이 엄청 불편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일자리를 찾겠다고 오셨는데 마스크를 안 쓰고 계셨어요. 제가 마스크 쓰고 오셔야 한다고 하니까 ‘끼니도 못 챙겨 먹겠는데 어떻게 한 장에 1,500원짜리를 둘이 매일 사냐’라고 하시는데,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미디어가 코로나 예방에 솔선수범하도록 시민들을 독려하며 희망을 말하고 있었지만, 재난은 평등하게 오지 않았기에, 당장 밥 한 그릇이 더 급한 이 노부부와 같은 사람들에게 코로나는 먼 이야기고 마스크는 언감생심이라는 현실을 알게 되었어요.

“구청에서 봉사자들한테 하루에 한 개씩 준 마스크를 저는 소독해서 며칠을 써서… 몇 장 여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분들께 그걸 2개 드렸는데 할 수 있는 게 고작 이것밖에 없어서 마음이 아팠어요.”

안양시자원봉사센터에서 만든 취약계층을 위한 면 마스크
안양시자원봉사센터에서 만든 취약계층을 위한 면 마스크
그렇게 부산에서 자원봉사를 마무리하고 안양 집으로 돌아와서도 노부부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마침 집 근처 안양시자원봉사센터에서 취약계층을 위한 면 마스크 만들기 봉사자를 구하고 있어서, 천에 필터를 덧댄 다회용 마스크를 만드는 일을 도울 수 있었어요. 부산에서의 봉사가 끝이 아닌 시작이 된 것이죠.

“필터를 잘라 준비하고 재봉 된 마스크의 실밥을 자르는 일을 했어요. 일주일쯤 뒤에 시내에서 어떤 할머니가 쓰고 계신 걸 보고 ‘어 내가 만든 건데?’ 싶어서 뿌듯하더라고요.”

나는 나누었지만 얻었습니다

사실 경석 학생은 평소에도 다양한 봉사를 해왔어요. 자기 공부를 하기도 바쁜 시기에 시키지도 않은 봉사활동에 나서게 된 이유가 궁금했어요.

“제가 처한 환경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로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거든요. 근데 봉사활동을 하면서는 내 모습이 중요한 게 아니라 봉사한다는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었어요. 그만큼 자존감도 올라갔고요. 내가 온기를 나눠주러 간 것이지만 봉사하고 나면 제가 받는 온기가 곱절로 더 컸어요.

경석 학생은 고등학생 때 넉넉하지 않은 형편 때문에 서울대 진학을 꿈꾸지 못했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결국 우리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지금이 ‘과분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해요. 그래서 그 고마움을 조금이나마 갚아나가고 싶고, 나눔으로 얻는 행복이 즐겁다고 해요.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함께한 일일 산타(좌)와 어촌 환경정리 봉사활동(우)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함께한 일일 산타(좌)와 어촌 환경정리 봉사활동(우)
경석 학생의 따뜻한 진심이 닿아 학교는 지난 개교기념식에서 경석 학생에게 봉사활동 특별상을 수여했어요. 이웃을 위한 따뜻한 마음을 용기 내 실천한 경석 학생의 서울대 생활이 더욱 빛나길 스누새가 응원할게요.
답장 (7)
  • 밀화부리
    밀화부리
    코로나나 무섭게 퍼지고 있을 때 현장에서 고생하시는 분들과 짐을 나눌 생각을 하고 그걸 실천한 게 정말 인상적이네요. 많이 느끼고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 두루미
    두루미
    경석 학생 화이팅!추운 가을 날 따뜻한 이야기로 아침부터 훈훈합니다. 덕분에 세상이 더 빛이 나고 아름다와졌어요.
  • 종다리
    종다리
    안녕하세요
    자기 생활이 바쁜 학생 신분 임에도, 이웃의 어려움을 무시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나눠주는 배경석 학생의 모습을 보고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모습에 너무 감동을 받고 제 스스로의 삶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되어 답장을 보내드립니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배경석 학생에게, 밥이나 커피라도 한 잔 사 드리고 싶네요.
    훈훈한 소식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지빠귀
    지빠귀
    저도 약 3년 반 동안 호스피스 병동에서 말기암 환자를 돌보는 자원봉사를 했었는데, 봉사를 통해서 주는 것 보다는 오히려 받는 것이 많았던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 보면 자원봉사가 저에게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말기암 환자들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랑하고 감사하며 삶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의 오만과 허세가 부질없음을 스스로 일깨웠고, 죽음은 당하는 것이 아니라 생을 마무리하는 축제로 준비하고 맞이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배경석님도 자원봉사를 통해서 아주 값진 삶의 밑거름을 배웠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응원하겠습니다.
  • 밀화부리
    밀화부리
    쉽지 않은 결심이었을 텐데, 바쁜 와중에도 자신의 시간과 정성을 아낌없이 나누는 배경석님의 이야기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뜸부기
    뜸부기
    뭉클한 소식에 댓글남기러 왔습니다.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스누새 통해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석님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 왜가리
    왜가리
    오랜만에 따뜻한 글을 읽고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나는 이러한 상황에서 왜 먼저 나서서 돕지 못했을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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