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번째
사서 고생하는 사람들
평범한 고등학교 교육을 받고 자란 우리는 자신을 ‘문과 출신’ 또는 ‘이과 출신’으로 구분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요. 그런데 엄밀히 문과인지, 이과인지 구분이 어려운 학생들도 있어요. 고등학교 때 나뉜 문·이과 분류와는 다른 길을 대학에 와서 찾은 친구들이 그런 경우에요.

“제가 외고를 나와서 문과 출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과학과 수학이었어요. 그래서 대학에서는 고등학교와 다른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자유전공학부 16학번 강병우 학생은 문과 출신이지만 물리학을 전공하고 있고, 이번 학기부터는 컴퓨터공학 전공에도 진입할 예정이에요. 병우 학생처럼 대학 와서 전공의 방향을 튼 경우를 ‘교차전공’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친구들을 ‘사서 고생하는 사람들, 사고사’라고 자조적으로 부르기도 하는 걸 보면 교차전공은 쉬운 길이 아닌가 봐요.
“외고를 나왔지만 사실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과학과 수학이었어요.”
“외고를 나왔지만 사실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과학과 수학이었어요.”
“공부에 욕심은 있었지만, 선뜻 이과 전공을 선택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컸어요. 잘못 선택했다가 망하면 어떡하나 라는 걱정이 좀 있었죠. 그런데 어느 교수님이 ‘학부 때 전공은 하고 싶은 것을 해도 괜찮다’고 응원해주셔서 용기를 냈어요.”

그렇게 사서 고생하는 길로 나선 병우 학생. 〈물리의 기본〉, 〈현대물리학의 기초〉 같은 개론 수업부터 시작했지만, 현실은 냉혹했어요. 지금까지 해오던 공부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분야에 적응해야 하는 일도 벅찬데, 다른 친구들은 훨씬 더 쉽게 잘하는 것처럼 보여 심적으로 힘들었다고 해요.

“진지하게 휴학을 할까, 그 고민과 계속 싸웠어요. 수업도 혼자 들어야 하고, 과제도 혼자 해야 했거든요. 이과 친구들은 2~3시간 안에 끝낼 수 있는 걸 저는 5시간, 6시간 붙잡고 있으니까… 거기서 오는 상실감은 말도 못 할 정도였어요(ㅠㅠ)”

반대로 이과 출신인데 인문사회계열 전공의 길로 들어선 학생도 있어요. 자유전공학부 19학번 이민성 학생은 문과생들도 어려워하는 미학을 전공하고 있어요. 심지어 민성 학생은 고등학교 때 장래희망이 수학 교수였을 정도로 자신이 ‘완전 이과’인 줄 알았대요.
우연히 들은 미학 교양이 민성 학생의 진로를 바꿔놨어요.
우연히 들은 미학 교양이 민성 학생의 진로를 바꿔놨어요.
“아이러니하게도 고2가 되고 나니 이과가 너무 싫은 거예요. 그래서 좋아하는 게 뭔지 고민해봤는데, 문학작품 좋아하고 음악, 노래 가사, 사진 이런 걸 좋아하더라고요. 그건 그런데, 그래서 뭘 해야 할지는 또 모르겠더라고요.”

고등학교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대학에 온 민성 학생에게 터닝포인트는 우연히 찾아왔어요. 수강신청 실패로 우연히 듣게 된 〈미학과 예술론〉 수업이 너무 재미있고 흥미로웠던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니 성적도 잘 나왔고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의 뒷면에 숨겨져 있던 무언가를 찾은 느낌이었어요. 바로 교수님께 찾아가 면담을 하고 미학 전공을 결심했어요.”

하지만 민성 학생처럼 이과였다가 인문계열 전공을 선택한 친구들은 의외의 복병을 만난다고 해요. 바로 ‘주변 사람들의 반대’에요.

“무슨 과인지 소개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자유전공학부’라고 해요. 그러면 물어보죠, 자유전공학부가 뭐냐고. 그래서 설명하고 나면 무슨 전공이냐고 물어보겠죠? 그럼 미학을 설명해야 하고. 그러고 나면 이제 그 질문이 나오죠. ‘그걸 왜 하냐?’
소위 ‘문사철’을 공부하겠다고 하면 왜 다들 말리는 걸까요. 스누새는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 들어요.
소위 ‘문사철’을 공부하겠다고 하면 왜 다들 말리는 걸까요. 스누새는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 들어요.
그럼에도 두 학생은 어려움을 잘 헤쳐나가고 있었어요. 어려운 부분은 두 배로 노력하고, 전공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생각하니 길이 보이더래요.

“예습하기 시작하면서 자신감을 얻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어차피 내가 모르는 내용이겠지’ 하면서 필기하는 데만 집중하고, 목표도 ‘아 이 정도만 이해해야지’ 하고 소극적이었거든요.”(강병우)

“교수님께 미학을 전공해서 어떻게 먹고 사냐고 여쭤봤죠. 그랬더니 꼭 미학으로만 먹고 살 생각을 하지 말라시는 거에요. 그때 정말 틀이 깨지는 느낌이 들면서 안심이 되더라고요. 그 후로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게 됐어요. 내가 미학을 하면서 컴퓨터공학, 통계학 공부를 하면 미학이 인문학에만 그치지 않고 나아가는, 다른 학문을 개척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이민성)

자유전공학부는 선택한 전공을 한번 취소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그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나름의 방법들을 찾아 적응해 나가고 있는 모습들이 대단해 보였어요. 또 공부나 진로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면 자유전공학부의 전문위원 선생님들이 개인 면담으로 도움을 주시기도 한다니까 두 학생이 좋아하는 공부를 놓지 않았으면 해요.
병우 학생이 요즘 공부한다는 논문(좌)과 민성 학생이 읽고 있는 책(우)
병우 학생이 요즘 공부한다는 논문(좌)과 민성 학생이 읽고 있는 책(우)
평소 관심 있던 양자컴퓨터 분야의 교수님 랩에서 여름방학부터 인턴을 시작했다며,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관련 분야 논문을 찾아 공부하는 병우 학생. 그리고 미학과 공학의 접점을 찾는 공부를 해보고 싶다며 자신만의 진로를 개척하는 민성 학생. 문과인지, 이과인지가 ‘좋아하는 공부’를 선택하는 데 굴레가 되는 것이 아닌, 더 많은 가능성으로 다가올 수 있기를 바라며, 두 학생의 ‘사서 고생길’을 응원할게요.
답장 (9)
  • 꾀꼬리
    꾀꼬리
    우리 자전학생들 항상 응원합니다!!!
  • 지빠귀
    지빠귀
    멋있는 학생들이네요 :):):)
  • 아비
    아비
    사과대 소속이지만 다음 학기에는 이과교양을 들어봐야겠네요!
  • 딱따구리
    딱따구리
    오랜만에 읽는 스누새 편지네요.
    곧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를 다니면서 진로에 대한 고민이 참 많았는데, 오늘 편지를 보면서 용기를 얻고 가요.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혹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것 그 사이에서 참 많은 생각이 교차하였는데
    두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니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좋아하는 것이 곧 잘하는 것이 될 수 있고 현실과도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변화나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큰 저라서 두 학생 정말 대단하고 멋지네요. 응원합니다 :)
    저도 조금 더 용기를 내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글이었습니다. 소식 전해주어서 감사합니다.
  • 뜸부기
    뜸부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유전공학부 졸업만큼 힘든 인생퀘스트가 없었던 것 같아요...!1, 2전공에 자전전공, 교양까지 들으려면 신경써야할 부분이 몇 배나 늘어나기 때문이죠. 그와중에도 교차전공을 선택해서 자신의 진로를 개척해가는 후배님들의 소식을 접하니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비록 학부를 떠난 입장이지만 항상 자전 소식에 귀 기울이고 응원할게요!자전은 마음의 고향이니까~ 소식 전해준 스누새 고마워요!
  • 두루미
    두루미
    대단한 열정과 도전, 그리고 젊음이 아름답습니다. 끝까지 잘 이겨내셔서 빛나는 졸업장과 함께 멋진 미래가 펼쳐지길 빕니다.
  • 매
    스누새~~ 항상 땡큐땡큐!!! 또 좋은 소식 기대해요.
  • 거위
    거위
    학부에서는 누가 봐도 '이과'인 학과를 나와 전공대로 취직해서 몇 년 살다가, 지금은 학부 전공과 아무 상관 없는, 소위 '문사철' 중 한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두 분 이야기가 반갑게 느껴지네요. 제가 공부를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할 때도 많고 인터뷰한 친구처럼 이렇게 살아서 먹고 살 수는 있는지 자주 걱정합니다만, 그래도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선택해 살고 있다는 것은 만족스럽습니다. 두 분 모두 힘내시고, 건강하세요. 그리고 스누새도 좋은 소식 전해주어 감사합니다.
  • 느시
    느시
    저도 난이도가 높고 소위 "빡센" 두 개의 전공을 복수전공하는 학생인데, 이 글을 보고 많이 공감이 되었어요.. 사서 고생하는 사람들..! 분명 고생한 만큼 행복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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